수행 뒤 창고동으로 건너가다.
해마다 겨울90일수행을 시작하면서 빼는 창고동 물이라.
11월 15일부터 이듬해 2월 15일까지는 쓰지 않는 공간.
두어 차례 바닥 보일러가 터지고 변기가 깨지고 한 뒤에야
겨울 나는 방법을 찾은.
또 겨울살림은 사용공간을 몰아서 쓰는 걸로 에너지를 아끼는.
창고동으로 들어가는 모든 곳의 물을 빼고,
화장실은 변기에 잠긴 물도 다 빼낸.
쓰지 않는 동안도 공간의 따스함(온도가 아니라 분위기)은 이어가고 있으라고
하나 달랑 걸려있던 춤명상용 천을 세 개 더 펼쳐 걸어두었네.
본격적으로 겨울수행에 들기 전 살살 움직일 사나흘.
숙제처럼 잠시 건너가야 할 댁이 있었네.
오랜 소망으로 새 집을 짓고 밥 그릇 하나도 이전 집에서 가져가지 않았다는 살림.
수월하게 짓는다 해도 얼마나 애를 썼을 것인가,
찬사도 아끼지 않고 전할.
차를 마시는 가운데 배출가스 5등급 경유 차량을 바꿀 때가 된 세 사람이
곧 새 차를 마련하는 것을 화제로 올렸다.
한 사람은 외제차를 신청해서 12월에 나온다 하고
또 한사람은 요새 새 차를 고르고 있는 중.
내 차는... 엔진이 심하게 덜덜거리고,
바닥으로 조금씩 새고 있는 냉각수를 넣어가며 타고 있는 상황.
2006년 1월 3일 취득세까지 완납해서 당장 탈 수 있게 된 차가 물꼬 운동장에 들어섰더랬다.
학비 한 번 쥐어 준 적 없고 혼례 때 살림 하나 싸준 것 없다고
딸에게 한 어머니의 선물이었던.
15년 동안 30만km 가까이 탄 차를
대기오염을 생각해서도, 고치는 비용을 봐서도 사는 게 낫다고 얼마 전 결론을 내렸더랬네.
“나는 아무래도(무슨 차라도) 괜찮은데... 내가 딱 끌 수 있게 내 앞에 오기만 하면 되는데...”
남편과 아들이 고르고 남편이 할부금을 갚기로 한.
내년 1월에야 나온다던가.
그 얘기를 들은 집주인이 내게 물었다.
“아니, 새 차, 이런 거 보면 타 보고 싶지 않아요?”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게 중요한. 차가 차지 무에 별 걸까.
“아니, 옥샘은 좋은 거 있으면 안 갖고 싶어요?”
“저도 예쁜 거 좋아해요! 저런 파티등도 좋고.”
오늘 선물로 가져온,
물꼬에 있는 와인 빈병에 4천원 하는 파티등을 꽂아 오늘 선물로 가져온 걸 가리켰다.
새 집도, 새 가구들도 사고 나면 언젠가 다 헌 거 되지 않나.
새 물건이 가져다주는 만족은 잠깐인 듯.
나는 그보다 더 근원에 있는 만족에 관심이 있는 거다.
더 오랜, 더 일정한!
서로 욕망에 차이가 있는 것.
각자 자기 욕망대로 사는 거고.
나는 일단 사치를 부릴 돈도 없고, 관심도 없다.
(아니 더 세밀한 표현으로는 내 식의 다른 사치가 있다. 꽃을 산다든지 하는.)
돈이 있다면 아마도 물꼬의 어딘가를 고치고 있을.
욕망이, 가치관이 다르다고 사이좋은 친구가 못될 건 아니지.
나는 차나 마시고 놀자고 만나는 것보다 일을 통해 만나는 관계를 신뢰한다.
이들만 해도 노동하며 만났던 사람들이고,
그래서 삶의 꼴이 매우 달라도 또 만나게 되었던.
차나 먹고 밥이나 먹자고 멧골을 나가 사람을 만날 일은 잘 없다.
함께 땀 흘렸던 시간이 이런 자리에 오게 했던.
우리 또 어느 날 마주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