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싸락눈 몇 점 날리다.
자유학교 물꼬 교문을 들어서기 전 왼편에,
그러니까 학교 뒷마을로 가는 길과 갈림길에
강철판 위에 그림이 그려진 물꼬 현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지난여름의 긴 장마는 얼마나 세밀하게 자신의 흔적을 남겼던지
어디에고 마주하게 된다.
그곳도 시커먼 점 곰팡이들이 꼼꼼하게도 자리를 틀고.
한참을 눈도 손도 가지 못한 그곳이었더니
오늘 뜨거운 물을 몇 차례 가져가 걸레로 닦아내다.
아구, 개운하여라.
다음번엔 학교 마당 그네를 닦아야겠다...
간장집에 달 문짝 하나 실려 오다.
휑하니 문도 없이 부엌 안을 드러냈던.
망가져서 떨어진 걸 두어 해 그대로 방치했다.
현재 제습이 가습이 먹일 물과 허드렛물을 쓰는 것 말고는 공간을 쓰지 않지만
붙어 있을 건 다 온전해야지.
하얀샘네 일터에서 놀던 문이었다.
내 일이려니 했더니 다는 것까지 손을 더해주고 나가신다고.
작업을 하는 동안 곁에서 뒷배로 있으면서 부엌 안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다.
거기 우리 집 아이 어릴 적 흔적들이 나오다.
9학년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아이는
이 멧골이 다 놀이터였다.
심심하다는 말이 없이 어쩜 그리 갖가지로 놀던지.
꼬깃꼬깃 접은 종이에 비밀기지들을 표시해둔 ‘비밀문서’였다.
사진을 찍어 아들에게 보내주었네.
우리들의 모든 어린 날은 천국이었으리니.
이 상황에도 또 한 아이가 계자를 신청하다.
‘드디어, 저의 아이를 계자에 보내다니.. 감개무량할 정도입니다. ^^’
그러게, 이런 날이 왔다.
대학을 다니던 때 물꼬의 품앗이로 여러 차례 계자에 함께했고,
혼례를 올리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 자라서 계자를 온다.
물꼬로서는 자주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순간마다 매우 기쁘고 놀랍다.
새로운 아이들은 그들대로 반갑지만
이곳에 손발 보탠 그이들의 아이가 오는 건
더 깊은 의미가 있지 않겠는지.
그야말로 외가라.
‘코로나를 뚫고 한번 모여 보겠어요.
최대한의 안전장치를 위해 여러 가지를 고심 중.
우리(167계자 구성원들에 더하여 부모님들까지) 잘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낙관합니다.’
아이가 특수교육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도 이번 소규모 일정이 참 좋을.
이번 일정만 해도 특수교사가 둘이라.
코로나19 확산세에 의료 현장에서 숨 가쁜 하루를 보내는 한 간호사의 상황을 읽는다.
생리대를 갈 시간도 없어 위생팬티에 기저귀까지 동원해야 한다는.
자신들은 '패딩을 입고 검사하러' 와서들 그런다지,
왜 이리 사람을 오래 기다리게 하냐고.
그들을 향해 간호사는
레벨디 안 반팔이, 글러브 안 얼어붙은 손이, 발이 얼어 썩는 것 같은 느낌에 대해 외치고 있었다.
곧 간호사로 나가는 태희샘을 생각했다.
세상 곳곳에서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귀한 손들.
보이나 보이지 않으나 그 그물 속에 우리가 산다.
세상이 다 우리를 살리니 우리 이미 귀하다.
우리를 살려주는 이들을 또한 우리가 박수치고 또한 살펴주기.
겨울90일수행 기간.
몸을 돌보는 일에 그리 게으르지 않는데도
또 어느새 움직임에 더디다가
어쩌다 해보는 물구나무서기 같은 것이 원활하지 않을 때
아이쿠나, 하고 놀라서 더 부지런이 몸을 푼다.
한동안 안 했더니 불안하게 거꾸로 떨리던 다리가 오늘은 나무처럼 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