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8.나무날. 눈

조회 수 474 추천 수 0 2021.02.13 23:30:04


 

아침 10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보라가 쳤다.

저녁답, 바람도 숨을 돌리고 눈도 멈췄기 눈을 쓸다.

아래 학교를 학교아저씨가 달골은 내가.

사이집에서 햇발동으로, 창고동으로, 그리고 대문 앞에서 전봇대까지.

밤에도 내일도 내린다 했지만

이렇게 쓸어놓으면 다음 일이 수월하다마다.

 

선 채로 책 하나를 들추고 있었다.

나는 ~했다, 이런 책은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것이 베스트셀러라면 더욱 그렇다.

대체로 그런 책은 적어도 그런 평을 받는 당시에는 더욱 읽지 않는다.

그런 책이 대체로 (심정적으로) 과장하기 일쑤이기 때문이었고,

때로 시류와 상관없이 제대로 읽고 싶기 때문에도.

정신과 교수이자 그 자신 양극성장애(조울병) 환자이기도 했던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이 쓴 자신의 조울병 투병기.

그의 책 제목들은 한국어 번역서에서 대체로 길다.

<Night Falls Fast><개인적이고 사회적이며 생물학적인 자살의 이해>였다.

원제가 <An Unquiet Mind>인 이 책의 한국어 번역은 <조울병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

(부제: '기분장애와 광기의 회고록; A Memoir of Moods and Madness')

그야말로 요동치는 마음’.

그렇다면, 어쩌면, 나도 양극성장애라 할 만하군.

조증 구간에서 넘치는 에너지를 마구 분출하고(그래서 문제가 되고)

조증을 벗어났을 때 자기혐오를 부르고 한다는.

 

조울병은 참으로 복잡한 병이다. 특히 조울병의 한 증상인 우울증은 말, 소리, 이미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

(...) 이혼한 사람, 실업자가 된 사람, 애인과 헤어진 사람들은 나름대로 상실을 경험했으므로 우울증이 어떤 것인지 이해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실의 경험에는 그 안에 어떤 느낌이 있다. 반면 우울증은 아무런 느낌도 없는 텅 빈 상태로서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겪은 그 무수한 조증은 내 인생에 독특한 감각, 느낌, 사고방식을 가져다 주었다. (...) 정신병적 상태에서도 내 마음에 새로운 미지의 구석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했다. 그런 미지의 구석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래서 나는 숨이 막힐 정도로 황홀했다. (...) 어떤 이미지는 너무나 기괴하고 추악하여 차라리 그런 이미지가 없었더라면, 또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그러나 늘 내 마음에는 미지의 새로운 구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힘으로 정상적인 나 자신을 되찾았고 약물치료와 사랑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내 인생이 녹초가 되어 버리는 것을 상상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 마음 속에는 무궁한 가능성을 가진 새로운 구석이 늘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굳게 믿었으므로.

 

설사 사랑이 완치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해도 가장 강력한 치료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존 던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순수하지도 추상적이지도 않지만, 그래도 사랑은 오래 가고 또 날마다 자라난다."

 

재미슨에게는 그의 광란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수습하고 안아주는 오빠가 있었다.

역시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나니.

나는 교사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럴 수 있는가를 되묻고 있다.

재미슨이 교수직에 지원했던 그 사회 분위기도 부러웠네.

자신의 오랜 조울증 병력과 아직도 투병 중임을 밝히는데

오히려 그래서 그는 채용되었다.

같은 환자의 고통도 잘 이해할 수 있고 이는 연구자의 자원이라고.

내가 시카고에 살면서 미국이 매력적이었던 서너 가지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자신 만큼은 그런 분위기를 지닐 수 있잖겠는지.

 

좋은 사람도 그렇지만 좋은 교사가 되는 것에서도

결국 제 마음 넓히는 일이 모든 것이라는 생각.

성장은 마음을 넓히는 일이고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잖을지.

나는... 가끔 받아들여지지 않는 아이로, 혹은 어른으로, 괴롭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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