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학교로 내려온 걸음이 정오가 되고 저녁이 되고 밤이 되고...
하기야 세 끼 밥상도 차려도 하루해가 얼마든지 가버릴.
아침뜨락에 들었다가 땀범벅이 되기 전 아침수행을 끝내고
학교 상황을 점검하고 일 흐름을 안내하러 내려왔더랬다.
그 길로 바로 학교 일에 돌입.
이웃 형님 댁 산 아래 밭에 들었다. 일을 거들러 온 건 아니고.
해마다 깻잎은 그 댁에서 얻는다.
벌써 꺾어 몇 자루 나누셨다는데,
물꼬는 코로나로 사람들이 거의 없겠구나 지나셨다지.
그래도 혹 필요하냐 일전에 연락이 있었던.
오늘이 마침 날이라. 곧 계자잖여.
밭을 훑었는데, 손 빠른 형님이 더 많이 따서 물꼬에 다 몰아주셨네.
대파도 잊지 않고 뽑아주셨다.
일일이 씻고, 특히 뒷면을 잘 봐야지, 거기 벌레 슬 수도 있거든.
“왜 이렇게 많지!”
그러면서도 또 씻고 씻고.
이쯤 되면 나머지는 그냥 데쳐서 무쳐버리고 싶어지는.
그래도 끝까지.
큰 솥단지에 양파 썰어 깔고 가린 멸치 넣고 대여섯 장씩 차곡차곡 넣고 양념 뿌리고,
다시 차곡차곡, 양념, 차곡차곡, 양념...
솥단지도 넘치겠을 때 나머지 얼마쯤은 깻잎김치로.
계자 반찬 하나 마련했네.
가지도 따고 고추다짐장도 만들어야겠다.
낮밥상을 물리고 식구들 모여 동쪽 개울 쪽으로 가다.
계자 때 그늘 짙은 이곳을 잘 쓰려지.
마침 물도 제법 넉넉해진.
슬레이트 버려져 쌓였는 걸 한쪽으로 치워 올리고,
뽑고 긁었던 풀더미 역시 멀리 치우고,
빗자루로 쓸 듯 정리하다.
아직 젖은 나무껍질들이 많은데 그건 다른 손이 있을 때 마저 하기로.
밤에는 정수기와 비상용 물통 청소.
정수기 물을 비워내고, 씻고, 뜨거운 물로 부시고,
안에 있던 맥반석도 씻고 뜨거운 물로 소독하고.
다시 제자리로 보내고 물을 채우고.
멧골이라 혹 물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을 때를 늘 대비한다.
있던 물을 비우고 통을 씻고 다시 채우고.
168계자는 코로나 검사를 하고 모이기로.
속속 결과들이 들어오고 있음.
여행자보험도 완료.
글집까지 주문 넣고 나면 계자 준비가 다 된 듯.
샘들 오고 아이들 오면 되지.
막상 오면 하던 걱정도 다 사라질.
어여들 오시라!
자정께 아침뜨락에 들었더니 밥못 물이 넘치고 있었다.
골짝에 스민 물들이 서서히 모이고 있는 걸 거라.
아래 달못으로 드는 밸브를 잠갔다는데,
어라! 잠깐 헛갈리는 거다,
밥못 바닥을 다 비우는 밸브랑 위쪽 물만 흐르게 하는 밸브가.
어느 쪽이든 한두 시간만 빼면 못 바닥 다 비워지는 일없이 안전할 테지.
‘샘, 문자 보는 대로 어느 밸브를 잠갔나 알려주시기.’
문자 넣어놓고.
올해 내려던 책이 나왔다: <다시 학교를 읽다>(한울림)
오늘내일 받을 수 있겠다고 편집자가 문자를 막 보냈다 싶은데,
저자 증정본이 도착했다.
그걸 펼쳐볼 짬이 없어서 다 저녁에야 풀었다.
인터넷 서점의 신간홍보는 다음 주에나 들어갈 것 같다고.
'도착하면 훑어보시고 연락주시길요~'
하지만 바야흐로 계자의 시간,
이젠 신간 아니라 신간 할애비가 와도 줄 눈이 없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