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좋았다. 아직 기울기(가을로) 직전 같은 따가움이었다.

날이 좋다고 누가 문자를 보내왔다.

놀기 좋은 날은 일하기도 좋은 날이라 답했다.

여기는 집짓기 덧붙이 공사 중.

 

간밤 햇발동에 늦도록 불이 켜져 있었다.

얘기가 길었던 모양이다.

같이 호흡을 맞춰 일한다는 게 쉽지 않을.

한옥목수(라지만 나무로 하는 일만 아니라 현장에 맞게 여러 분야 일을 하는) 민수샘과 호수샘이

이번 작업을 맡고 있다.

일이야 건축현장 강도지만(심지어 더 일찍, 더 늦도록 일한다)

삯의 일부를 기꺼이 물꼬에 보태기로 한 그들이다.

고마운 인연들이 삶을 밀고,

그처럼 물꼬도 밀어간다.

 

이른 아침 아침뜨락에 들어 하루 사이 또 차오른 밥못 물을 빼고,

빼는 동안 경사지 풀을 뽑고,

바위 곁에 서서 해를 기다렸다.

오늘은 아침뜨락에 드는 해를 기다렸다 시간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벌써 이쪽 골짝 위쪽은 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07:09 밥못에 해 닿았다.

뜸을 오래 들이나 올라올 땐 그야말로 쑤욱 올라 놀래키는 해.

아침뜨락에 들어서서 왼쪽 측백 울타리를 따라,

그러니까 휘돌아 내려가는 도랑을 따라 풀을 맸다.

사이집 바깥수돗가에서 작업도구들을 씻으며 나와 있던 사다리를 보았기,

이때구나 하고 올라서서 사이집 욕실 창문과 환풍구도 닦다.

 

오늘 덧붙이 공사는 달골이 아니라 학교가 현장.

치목(목재를 다듬고 손질하는)을 운동장에서 하는 중.

농기구집에 기둥재가 있었던.

들어와 10년 가까이 되었으니 마를 대로 마른.

건축재로 썼을 때 뒤틀릴 염려는 거의 하지 않아도 되겠으나

단단해서 작업이 쉽지 않았다.

빨리 달려 조금 늦도록 한다면 하루만에도 하지 했던 작업이,

넉넉하게 잡아도 하루하고 반나절을 더하면 되겠다 했지만

사흘은 족히 걸리겠다. 날이 더 안 간다면 고마울.

 

저녁답에는 아침뜨락 지느러미길의 메타세콰이어 사이,

그리고 그 너머 아래에 난 풀들을 자르다.

끝에서 4번까지는 손으로 매고 자꾸 다른 일을 먼저 만지고 있었더니

마침 들어왔던 하얀샘이 예취기를 돌리다.

밥상을 물리기 전 준한샘도 내려와 같이 저녁을 먹을 수는 있었네.

 

하루가 길고, 또한 짧다.

고단으로 치자면 길고, 쌓인 일로 보자면 짧은.

글 한 줄 책 한 줄 없이 하루가 간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5786 2021.10.29.쇠날. 맑음 / 지적장애 옥영경 2021-12-15 402
5785 2021.10.28.나무날. 맑음 / 앞으로 확 자빠져! 옥영경 2021-12-15 386
5784 2021.10.27.물날. 정오를 지나며 말개진 하늘 / 일상을 붙드는 일이 자주 쉽지 않다 옥영경 2021-12-15 351
5783 2021.10.26.불날. 맑음 / 생의 어떤 순간이 우리를 후려치지만 옥영경 2021-12-15 342
5782 2021.10.25.달날. 맑음 옥영경 2021-12-15 338
5781 10월 빈들모임(10.22~24) 갈무리글 옥영경 2021-12-10 454
5780 10월 빈들 닫는날, 2021.10.24.해날. 맑음 옥영경 2021-12-10 349
5779 10월 빈들 이튿날, 2021.10.23.흙날. 맑음 옥영경 2021-12-10 404
5778 10월 빈들 여는 날, 2021.10.22.쇠날. 맑음 옥영경 2021-12-10 370
5777 2021.10.21.나무날. 해와 구름 사이 옥영경 2021-12-10 357
5776 2021.10.20.물날. 그런대로 맑음 / 풀을 검다 옥영경 2021-12-10 366
5775 2021.10.19.불날. 정오께 한 차례 비 옥영경 2021-12-09 369
5774 2021.10.18.달날. 맑음 / 힘이 나서 뭘 하는 게 아니라 옥영경 2021-12-09 358
5773 2021.10.17.해날. 갬 / 첫얼음 옥영경 2021-12-09 435
5772 2021.10.16.흙날. 비 /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옥영경 2021-12-09 367
5771 2021.10.15.쇠날. 비 / 더하기 공사 이튿날 옥영경 2021-12-09 439
5770 2021.10.14.나무날. 맑음 / 더하기공사 첫날 옥영경 2021-12-08 382
5769 2021.10.13.물날. 낮 서울 맑음, 밤 대해리 비 옥영경 2021-12-08 572
5768 2021.10.12.불날. 비 옥영경 2021-12-08 345
5767 2021.10.11.달날. 비 옥영경 2021-12-08 345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