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5.나무날. 맑음

조회 수 362 추천 수 0 2021.12.30 12:01:15


 

해가 짧으니 맑은 날도 대체로 구름이 있다 착각을 하고는 한다.

오늘만 해도 늦은 해에 흐린가 했던.

 

출근 전 도일리를 하나 뜨기 시작했다.

마침 얼마 전 편물 책도 하나 챙겨놓았더랬다.

어제 면실을 한 타래 샀고, 코바늘을 꺼냈다.

아주 오래전 해본 적이야 왜 없겠냐만 잘하지 못했더랬다.

엊그제 아홉 살 아들과 하룻밤을 묵어간 이가 불을 지폈다.

사람이 만나면, 특히 좋은 만남은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

그가 손바느질로 만들던 원피스를 주고 갔고, 답례를 하고도 싶었다.

자기가 창작할 게 아니라면

그런 일은 굳이 머리 쓰지 않아도 책이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된다.

잘 모르겠다 싶으면 실을 풀면 되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고.

이 또한 시간을 들이는 일이겠네.

이런 일이란 게 앉은걸음에 내리 하고파 밤을 새우기 십상 좋다.

앉은자리에서 내리 하고파 화장실가는 것도 미루게 되기까지.

두어 단 뜨고 밀어놓았다.

3호로 듬성듬성 뜨니 30cm 원형 도일리야 두어 시간 들이면 될.

 

공문 안 보내주시나요?“

일전에 폐교 운영 관련하여 와야 할 알림이 여태 소식 없어 도교육청으로 바로 문의.

그제야 며칠 전 교육지원청에서 공지가 떴고,

시행안이 합리적이지 않아 문의를 했더니 문제 없다는 담당자의 답면.

상위기관으로 다시 전화 넣어서야 알림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

그렇다고 공지에서 그 사실이 수정되지는 않고 실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참고하겠다고.

관련서류를 보내야 해서 문건들을 챙기고 있는데,

교무행정자리가 비어 있으니 이런 일이 퍽 번거롭다.

마침 가까이 있었던 아들이 불려와 엑셀프로그램으로 뚝딱.

젊은 친구들이 잠깐 하면 될 걸 나는 거의 종일 잡고는 한다.

이런 건 아무나 금방 하는 일이구요, 안 되면 맡기면 되고,

정작 어머니가 하시는 일이 대체불가죠.”

이런 일에 의기소침하게 되는데, 아들의 위로라.

 

밤에 책상 앞을 나와 다시 잠깐 뜨개질거리를 만지는데,

이게 순간 순간 배움이 있네.

해봤던 일이 아니라 편물책의 그림으로는 다음을 잘 모르겠는데,

막상 해보면 그 과정을 비로소 아는.

잘 못 뜬 뒤에야 바름을 알게도 되는.

생의 가르침은 책 아니어도 어디나 있는.

 

사람이 일용기거日用起居와 보고 듣고 하는 일이 진실로 천하의 지극한 문장이 아님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스스로 글이라 여기지 아니하고 반드시 책을 펼쳐 몇 줄의 글을 뻑뻑하게 

목구멍과 이빨로 소리를 낸 뒤에야 비로소 책을 읽었다고 말한다. 이 같은 것은 비록 백만 번을 

하더라도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 홍길주 <이생문고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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