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7.흙날. 맑음

조회 수 397 추천 수 0 2021.12.30 12:03:12


얼마 전 속을 좀 끓인 한 품앗이에게 글월 하나 보내다.

안셀름 그륀 신부의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의 몇 문장.

 

네 자신을 아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네 자신 뿐이다.(...)

우리 모두는 늘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배심원석에 앉혀놓고 피고석에 앉아 우리의 행위를 변명하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사람들은 사건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사건에 대한 표상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죽음이 끔직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이 끔찍한 것이고

깨어진 꽃병 자체가 끔찍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과 꽃병을 동일시하여 꽃병이 깨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온 마음으로 꽃병에 집착하는 것이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이제 피고석을 떠나시라 하였네.

 

고래방 앞 김치통들을(항아리는 아니고 커다란 고무통. 거기 김장비닐을 까는) 씻었다.

곧 김장을 하고 묻을 테니까.

다섯을 다 채우던 살림은 이제 두 통을 묻고 있다.

쓸쓸하다거나 회한으로 하는 말은 아니고, ‘그러하다고 말하고 있는.

 

대처 식구들이 사는 곳의 살림은 옹색하다.

식탁만 해도 좁다.

오래전 기락샘이 혼자 살던 살림에 내가 나무로 만들어 보낸 것이었으니 2인용으로도 빠듯한.

같이 보낸 거실 응접테이블은 꽤 넉넉한데,

당시 살던 집 부엌이 좁아서도 조그맣게 만들어 보냈던.

혼자 살아도 엉덩이 걸치고 잠깐 앉아 뭘 좀 먹을 수 있도록.

아들이 합류한 뒤로도 아직 그 식탁을 두 사람이 쓰고 있다.

거기 세 식구가 다 모여 앉자면...

서구식으로 큰 접시를 하나씩 안고 앉는 방식이거나

메인요리에 두어 가지 찬으로만 간단하게 차려 먹는.

물꼬에서는 멀리서 오는 이들을 잘 멕여 보낸다고 반찬을 여러 가지 올리고,

배식대도 시원시원하게 넓으니 이것저것 자꾸 올리게 되는.

식탁 역시 널찍널찍 하니까.

물건을 만들고 오래 잘 쓰이면 좋은.

아직 변함없이 튼튼하고, 이 살림으로도 잘 쓰이고,

식구들도 쓰면서 또한 애정이 담기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946 2022. 3.22.불날. 맑음 / 물꼬의 영동 역사만도 26년 세월 옥영경 2022-04-22 397
5945 2023. 6.10.흙날. 멀리서 천둥치고 옥영경 2023-07-21 397
5944 2020. 8.26.물날. 비 옥영경 2020-09-17 398
5943 2021. 3.10.물날. 맑음 옥영경 2021-04-22 398
5942 2021. 4.28.물날. 뿌연하늘 옥영경 2021-05-27 398
5941 2021. 6.22.불날. 소나기 옥영경 2021-07-12 398
5940 2021. 8. 6.쇠날. 저녁답의 소나기 옥영경 2021-08-12 398
5939 2021.10. 3.해날. 맑음 / 설악·4 옥영경 2021-12-01 398
5938 2021.11.15.달날. 맑음 / 7mm 피스 하나 옥영경 2021-12-23 398
» 2021.11.27.흙날. 맑음 옥영경 2021-12-30 397
5936 2021.12.30.나무날. 눈과 바람 옥영경 2022-01-11 398
5935 2022. 9. 1.나무날. 살짝 비춘 해 옥영경 2022-09-14 398
5934 2023. 1.18.물날. 눈 옥영경 2023-02-11 398
5933 2023. 5.21.해날. 황사, 지독한 황사 옥영경 2023-07-05 398
5932 2020.10. 6.불날. 맑음 옥영경 2020-11-18 399
5931 2020.12.11.쇠날. 뿌연, 미세먼지 심해 그렇다는 옥영경 2021-01-10 399
5930 2021. 8.16.달날. 갬 옥영경 2021-08-27 399
5929 2022. 3.20.해날. 흐림 옥영경 2022-04-20 399
5928 2022. 6.29.물날. 흐림 옥영경 2022-07-26 399
5927 2023. 6.19.달날. 맑음 옥영경 2023-07-24 39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