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다. 눈 덮힌 멧골이다.

차례를 지내는 것도 아니라 느지막히 떡국을 먹고,

난로에 청주를 데워 한 모금씩 마시다.

이태째 명절을 쇠러 가지 못한 학교아저씨.

기락샘과 하다샘이 습이들을 데리고 정월 초하루 산책을 나가다.

 

불날 저녁부터 물날 저녁까지 식구들이 차려주는 밥을 먹었다.

지난 126일 건강검진에서 위장검사를 한 뒤로 계속 위와 장이 불편하다.

조금만 먹어도 풍선처럼 배가 부풀고,

전신이 몸살처럼 통증 중.

 

학교에서는 아무 일이 없었다.

제습이와 가습이조차 짖을 일이 없었다.

때로 산짐승이나 새들 때문에 컹컹거릴 때도 있으련만.

 

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연들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문태준의 思慕(사모)를 읽는다.(<가재미>, 2006)

 

思慕

- 물의 안쪽

 

바퀴가 굴러간다고 할 수밖에

어디로든 갈 것 같은 물렁물렁한 바퀴

무릎은 있으나 물의 몸에는 뼈가 없네 뼈가 없으니

물소리를 맛있게 먹을 때 이()는 감추시게

물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네

미끌미끌한 물의 속살 속으로

물을 열고 들어가 물을 닫고

하나의 돌같이 내 몸이 젖네

귀도 눈도 만지는 손도 혀도 사라지네

물속까지 들어오는 여린 볕처럼 살다 갔으면

물비늘처럼 그대 눈빛에 잠시 어리다 갔으면

내가 예전엔 한번도 만져보지 못했던

낮고 부드럽고 움직이는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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