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이들 보내자마자 가마솥방 밥상머리무대에 엎어져 쓰러졌더랬다.
누군가 따뜻한 물주머니를 만들어주었고,
안고 비몽사몽.
계자 샘들이 누가 나가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기락샘이랑 학교아저씨랑 겨우 뒷정리.
다행히 달골 깔끄막이 다 녹아 차가 올라올 수 있었다.
마지막 굽이길이 얼어붙었다면 그 직전에 차를 세워놓더라도 차를 끌고 와야 했던.
도저히 걸어올 수 없는 밤이었다.
콩주머니에 물주머니를 안고 입은 옷으로 잠이 들어
간밤 11시 겨우 정신을 차려 그제야 씻었다.
밤새 호되게 앓고 눈을 뜬 아침,
새 아침, 새 삶이었다.
오전에 영상물 하나 보며 몸을 쉬고,
점심께 학교로 내려가 부엌 갈무리.
까만 누룽지는 물에 탄 부분들을 씻어내고 씻은 쌀 위에 얹어 새 밥을 지었다.
남은 짜장을 싹싹 긁어먹고,
산오름에서 남았던 어묵은 건져놓은 덕에 덜 불어있어 국으로 끓여냈다.
미역초무침이며 한주먹씩 남은 반찬을 몇 개 꺼내 털다.
(어제 아이들 나갈 때 찾던 유리 반찬그릇 하나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어찌 된 것일까...)
증세를 되짚어보니 독감이었나 보다.
현준이가 많이 아파 병원 갔더니 독감이라 했고,
열이 높은 채 간 수범은 감기약 먹고 푹 잤더니 기침과 코만 훌쩍인다고.
민혁이도 독감이라도 하고.
먼저 앓아누웠다 일어난 세미도 독감이지 않았을지.
그래도 부모들 손에 갔으니 걱정은 놓는다.
늦은 오후에야 비로소 계자 기록을 이어간다...
171계자 산오름을 하고 있을 때 여러 차례 전화가 들어왔더랬다.
군청 산림과장이었다.
‘계절학교 중. 오늘은 아이들과 산에 들어와 있습니다. 월욜 통화가능요.
아니면 문자로. 밤에 확인하겠습니다.’
다시 답문자가 와 있는 걸 한참 뒤 확인했더랬다.
‘점심 후에 뵐려고 상촌 왔어요! 참관해도 되나요?’
만나려면 왜 미리 연락을 못하는가? 왜 번번이 군청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일을 하는가?
더구나 참관이라면 더욱 미리 연락을 했어야.
자신들은 공적인 일을 하므로 그리 해도 된다는 건 오만으로 보일 수도 있다.
답을 하지 않은(할 수 없던. 아이들과 있으면 외부와 연락을 끊고 새 세상 새 문화를 만드는) 가운데
오후에 학교에들 다녀갔다. 아이들도 없는 텅빈 학교였다.
학교아저씨가 바로 돌려보냈다고.
오늘 아침에야 답문자를 보냈다.
산오름 일정 가운데 아이들이 떠나는 상황과 그 사이 장면 하나,
그리고 눈썰매장을 휘젓는 아이들 사진.
‘이곳에 오실 때 미리 약속을 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여기는 바깥 강의도 있어 부재할 때도 있고,
또 수업 중에는 사람을 들이기 어렵구요.
지난번에도 그렇고, 조금만 계획 하에 움직인다면, 혹은 저희 공간을 배려한다면,
미리 연락줄 수 있지 않으실지요.’
앞으로 그리하겠다는 답이 왔다. 그리고 덧붙여진 문자.
‘제가 구상하는 산촌문화학교도 선생님께서 꼭 도와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학교터 주인이 교육청에서 지자체로 넘어가는 시기이다.
거기 물꼬의 위치가 어디로 어떻게 잡힐지 결정될 2023학년도라.
교육청과도 군청과도 협의가 있을 다음 주라.
이와 관련해 지난 한해 부침(浮沈); 물 위에 떠올랐다 물 속에 잠겼다 함)이 좀 있었고,
비로소 방향이 정해짐. 정하지 않는 걸로 정한.
흘러가는 대로 가보겠다. 쓰고 보니 퍽 물꼬 식이다 싶은.
이르는 곳이 물꼬가 결국 원하는 곳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