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뫼 농(農) 얘기 78 쌀 한톨의 의미

조회 수 1217 추천 수 0 2005.12.26 16:48:00
농부 손이 88번이나 닿는 쌀 한 톨의 의미

[오마이뉴스 위창남 기자]



ⓒ2005 위창남

가로 4.5mm 세로 2mm 두께 1.5mm. 바로 쌀 한 톨의 크기다. 그렇지만 타악기의 거장이었던 고 김대환씨는 이 조그만 쌀 한 톨에 반야심경 전문과 연도, 이름 석자까지 총 283자를 새겨 넣기도 했다. 작고 조그만 쌀 한 톨이 누구에겐 넓디넓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일화다.

조미료나 양념통에 습기가 차서 구멍이 자주 막힐 때는 이 쌀알을 몇 개 넣어 주면 쌀알이 습기는 물론이고 가루가 뭉치는 것도 막아준다고 한다.

우리집은 보름에 20kg, 그러니까 한 달이면 40kg의 쌀을 먹는다. 문득 20kg 쌀 한 포대에 쌀알이 얼마나 들었을까 궁금해 인터넷을 찾아봤더니 정말 이 걸 세어본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일일이 세어본 것은 아닌 깨지지 않은 쌀알 350알을 세어서 저울을 달아보니 9.5g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계산을 해보니 20kg 쌀 한 포대엔 쌀알이 약 73만개가 들어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차이는 있겠지만 40kg의 쌀을 먹는 우리집은 약 150만개의 쌀알을 먹는 것이 된다.

습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밥을 먹다보면 밥그릇에 밥알이 몇 개씩 남아 있는 것을 본다. 어렸을 때였다. 1년에 몇 번 올까 말까한 이모부가 계셨는데 워낙 무서워서 난 싫었다. 특히 밥을 먹을 때면 밥알을 남김없이 먹으라며 자주 호통을 치곤 하셨다.

“그 밥알들을 그렇게 남기면 쌀 농사 짓는 분들에게 죄를 짓는 거야. 너 쌀을 만들기 위해 몇 번의 손이 가는 줄 아느냐?”

몰라서 멀뚱거리고 있는 나에게 자그마치 88번이라며 그렇게 정성이 가는 쌀을 남기는 것은 죄악이라며 유난히도 나무라셨다. 어린 나는 그것이 귀찮고 싫었지만 어쩌다 이모부가 오시는 날이면 밥알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게 됐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그런지 지금도 밥을 먹을 때면 밥알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후에 왜 88번인가 궁금해 알아 봤더니 한자로 쌀 미(米)자가 위에 팔(八) 아래에 팔(八)이 합쳐져 그렇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도 그만큼의 노력이 든다고 한다. 요즘이야 기계화로 인해 그 정도의 손길이야 가지 않겠지만 수고로움은 그에 못지않을 거라 여겨진다. 나도 화실에서 팀원과 식사할 때면 잔소리꾼이 된다.

“밥알 남기지 말고 깨끗이 먹어라.”

그까짓 밥알 몇 개 때문에 유난을 떤다고 다들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지만, 잔소리 덕인지 밥을 먹을 때 보면 밥알은 거의 남지 않는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족은 반찬을 아주 조금만 담는다. 반찬을 꺼낼 때마다 다시 담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남김없이 다 먹었다는 만족감이 생긴다.

밥을 먹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에게도 밥알을 남기지 않도록 가르친다. 아이는 먹는 것보다 떨어뜨리는 것이 더 많다. 내 부모님은 식사를 하시다 방바닥에 밥이 떨어지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냥 주워서 드시곤 했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한다. 아이가 떨어뜨린 밥들은 다 내 몫이다. 그래서 식사를 하기 전에 깨끗하게 청소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발우공양’이라 하여 밥은 물론이고 자신이 먹은 그릇이 깨끗이 되도록 남김없이 먹는다고 한다. 발우공양은 소화하기 힘들 만큼 배부르게 먹고, 남은 음식을 함부로 버리는 우리의 생활 습관을 되돌아보게 하며 소비하는 일상적인 삶을 넘어 생산하는 삶을 배우는 자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2005 위창남

요즘 WTO(세계무역기구) 문제로 농민들이 화가 많이 난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쌀 한 톨의 의미가 아주 소중하게 다가온다.

/위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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