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를 위하여
김남주
없는 놈은 농자금도 못 타 쓴다더냐
있는 놈만 솔솔 빼주기냐
조합장 멱살을 거머쥐고
면상을 후려치던 아우야
식구마다 논밭 팔아
대학까지 갈쳐논께
들쑥날쑥 경찰이나 불러들이고
허구헌날 방구석에 처박혀
그 알량한 글이나 나부랑거리면
뭣한디요 뭣한디요 뭣한디요
터져 분통이 터져 집에까지 돌아와
내 얄팍한 귀청을 찢었던 아우야
내 사랑하는 아우야
오늘밤과 같이 눈앞이 캄캄한 밤에는
시라도 써야겠다
쌓이고 맺힌 서러움
주먹으로 터지는 네 분노를 위하여
고이고고인 답답함
가슴으로 터지는 네 사랑을 위하여
차마 바로는 보지 못하고
밥상 너머로 훔쳐보아야만 했던
내 눈 속 네 얼굴을 위하여
시라도 써야겠다
그 알량한 시라도 써야겠다
오늘밤과 같이
눈앞이 아찔한 밤에는
김남주 시선집 [꽃 속에 피가 흐른다] 30쪽 중 시 전문
그의 시를 접할 때면 늘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습니다.
그가 태어난 곳이 남도의 끝자락이라서
그가 자라난 곳이 농투성이 갯자락이라서
저와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시가 단순해서
그의 말이 쉬워서
그의 정신이 너무나 분명해서
제 몸의 어느 한 군데가 뚫리는 듯하여
늘 몸을 떨며 시를 읽었습니다.
한 낮, 졸음이 오는 가운데 그의 정신을 한 쪽 펼쳐들고
물꼬의 여름을 생각해봅니다.
지금도 선연합니다.
무성한 풀과 나무들로 점령당한 물꼬와 대해리,
초저녁 참, 헐목에서 내려
내를 끼고 굽이굽이 올라가는 길을 따라 가며
불렀던 조용조용한 노래들.
그리고 웃음과 흙먼지 묻은 손으로 그대로
맞이해 주던 물꼬의 사람들.
무엇이든 지나고 다시 찾아보지 않으면 잊습니다.
그것과 만나지 않은 것입니다.
늘 그것의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고 떠올려야
우리는 그와 더불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들이 또는 내가 처음 만난 '물꼬'와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면
처음 물꼬에 들어설 때의 두근거림과 부담감으로
늘 물꼬에 있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눈 앞이 아찔한 밤과 훔쳐보던 밥상을 떠올리며
물꼬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