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영경선배, 일한입니다.
마지막 연락드린지 벌써 10년은 지난 거 같아요.
너무 오래돼서 혹 누구였더라 가물가물 하셔도 제 잘못입니다.
옛날 정말 잠시 물꼬에서 품앗이일꾼도 했던 일한입니다. 목지영, 홍민표 동기요.
고황 동문 모임에서 선배들이나 지영이한테 물꼬 이야긴 한두번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와 홈페이지라도 찾아 와 보네요.
전 그 사이 결혼도 하고 딸내미도 생겼습니다. 그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곧 첫번째 겨울방학을 맞네요.
방학에 뭐 시킬 거 없을까 생각하다 정말 갑자기 물꼬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처럼 사이트에 들어와 이곳저것 둘러보다 글 남깁니다.
선배는 정말 오래던부터 말씀하신 대로 살고 계시네요. 의미있게, 멋지게 사시는 것같아 참 부럽습니다. 존경스럽기도 하구요.
하다도 잘 컸네요. 아직 어린데 좋은 책 많이 읽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네요.
전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멍 하니 시간만 흘러보낸 것 같습니다.
그냥 정신없이 하루하루 살아내는 때가 참 많아졌습니다.
사회생활 초기엔 속도는 좀 느린 것 같지만 방향은 잘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방향도 틀린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ㅠㅠ
정신없이 시간만 자꾸 흘러가는 것같은 생각이 든다고 할까요.
희한한데... 갑자기 하다 태어날 때 즈음 이름을 왜 하다로 지었는지, 뭐 그런거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홍대근처 사무실 있을 때 '오래된 미래' 같은 책 인용하시면서 이런저런 말씀 해주셨던 기억도 나고요.
그런 이야기들, 잘 기억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떠올려 보니 선배 목소리는 오래됐는데도 또렷이 기억나네요.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딸내미 데리고 학교에 놀러가도 좋을 것 같구요.
초등학교 1학년이면 아직 어린 거 같기도 한데..
딸내미한테 겨울 계자 가고 싶은지 물어보고 가능하면 신청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건강하시고...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혜준이가 많이 씩씩한가 봐, 이 먼 곳을 오겠다고 하니.
엄마도 대단하고.
긴 시간 떨어뜨려놓기 어려워하는 부모들도 적잖거든.
아니면 그대가 설득을 시켰을 수도... 하하.
들어오는 날은 다른 샘들 몇이 아이들을 데리러 나가고,
돌아가는 날 역에 바래러는 내가 간다우,
두 주 눈밭에서 뒹굴고 시커매서 꼴이 말이 아니게 보겠지만.
혜준이 오기 사흘 전, 혹여 늦어지면 이틀 전 전화 넣게 될거요.
왜 이렇게 할 말이 자꾸 생각나는지...
반가워서 그럴 테지.
지영이와 원석이네가 괴산 어드메쯤에서 캠프를 하고 있다고도 수년 전 소식 들었네.
다음에는 혜준이 거기 들러봐도 좋겠으이.
사람 사이 켜켜이 쌓이는 세월이 어디 무량억겁이란 말로만 될까.
좋다, 참 좋다.
곧 보겄네...
근데, 나는 왜 그대가 민표네보다 후배라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적지.
아마도 모두 일한이를 예뻐라 해서 그랬던가 보네...
아, 남용이네 출연섭외 왔던 적도 있었다,
누구와 정은아의 아침방송이라던가, 거기 우리 가족 출연하라고.
것도 벌써 수년 전일세.
원고 땜방 해주며 맺은 인연이 오래도 될세, 하하.
다른 캠프라면 못보냈을 겁니다.
사이트에 올라온 글들 보니 예전 생각이 새록새록 나더라구요.
십수년전 잠시였지만 품앗이일꾼하면서 아이들만 생각하며 즐겁게 지내고,
저 조차도 많이 배웠던 기억이 나더라구요.
진심으로 아이를 위하고 믿어주고, 그러면서도 모두가 유쾌하고 재밌게 지내는 게 요즘 쉽지 않잖아요.
그런 분위기라면 혜준이에게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혜준이 외할머니를 제외하고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첫 경험인데 잘 적응할 것이라 믿어요.
그나저나 저는 그럼 선배를 그날 뵈긴 힘들 것같군요.
캠프 첫날 아이를 데리고 영동역에 갈 건데,
아이들과 같이 가는 것 좋지 않을 것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제 따로 찾아 뵈야겠습니다. 적당한 때가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팁을 좀 주시면 고맙고요. ^^
어쩜 우리 뉴질랜드에서 같은 시기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문득.
2001년 여름 끝에 나가
호주에 일 년여 있다 뉴질랜드로 넘어가 석달을 보냈더랬는데...
(그러고도 다섯 개 나라를 더 돌았더라지.)
‘리버사이드 커뮤니티’며 ‘투이 커뮤니티’에 머물고,
웰링턴에선 공항에서 달라이라마를 만나기도 했더랬단다.
무슨 마음에 세 돌 지난 아이를 데리고 나가 그리 다녔을꼬...
아이들 들어오는 날 나가리다.
엉덩이가 들썩여서 말이지.
얼굴만 보고와도 좋으리라, 좋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건 춘삼월 훈풍 불 때로 합시다.
휑휑한 이 계절은 서글푸거든.
이왕이면 산마을이 고울 때 오구려.
몇 자.
어찌 그대를 잊을까, 얼마나 이뻐했던 후배인데.
무엇보다 물꼬의 품앗이일꾼을 기억하는 건 도리 아니겠느뇨.
물꼬의 오랜 시간은,
주로 대학생들이었던 품앗이일꾼들이 어느새 가정을 일구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그 아이들이 이곳에 오고 있다지.
재작년과 작년엔 중국에서도 그렇게 아이들이 다녀갔더랬다.
이곳이 교육 공간이기에 그리 쉬 다시 기억될 수 있었을 게야.
고맙고, 감사한 일들일세.
민표랑 지영이 동기라는 설명보다
승현형을 먼저 들먹여야 빠르지 않겠느뇨? 혹시 예의? 하하.
위로 형수, 아래로 남용이도 퍽 마음이 가까웠고나.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났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었고,
내가 세 해동안 다른 나라 공동체와 자유학교들을 떠돌고 다녀와서는
그대가 경제부 기자라는 것, 그리고 그 몇 해 뒤엔 단행본을 냈다는 소식도 들었네.
아아아, 딱표 민표한테 들었고나.
나...
지난 며칠은 200포기 김장에 고추장 담고 메주 쑤고 청국장을 띄웠네.
산골아줌마로 늙었고,
아이들은 할머니라 부른다오, 하하.
낡았지만, 교육은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여는(혁명이라고 썼다가 이런 낱말이 있었던가 피식 웃었다오) 최고 도구일 수 있다는 생각은 그리 변한 것 같지 않고,
하지만, 핏대는 세우지 않고 그저 산다. 어깨 힘 뺀 거?
그-저-산다, 내 마음이 내 시량이거니 하며,
그리하여, 삶의 가장 큰, 그리고 최고의 소망은, '끝날까지 나날이 다만 지극하게 살기'!
딸내미라...
심성 고운 일한이를 닮았으리라.
보고 싶다.
그래, 연락 자주 하자.
이번 학기엔 서울에서 강의가 잦았는데...
다음 봄학기 일정은 산골을 별 벗어날 생각이 없고,
간다면 경주에서 있는 장애재활교육에 힘을 좀 쏟을 수도 있겠다,
다음 가을학기는 티벳에 있지 싶어.
겨울은 스산하여 사람 맞기를 꺼리고,
꽃 피는 봄 오면 가족들이 꼭 왔으면 좋겠으이.
밥과 잠자리, 그리고 쉼을 내지.
그래야 우리가 품앗이 한 게 아니겠느뇨.
정녕 그리우이.
마음 좋은 게 제일이더라.
평안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