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16.나무날. 갬

조회 수 13 추천 수 0 2024.07.01 00:24:16


한 아이가 빌딩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나는 그 아이를 지나쳐 막 문에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내 뒤로 지나갔던 아이가 뒤돌아 달려와

내 손보다 먼저 문을 열었다.

나는 깁스 중.

내 팔이 그 아이 눈에 붙들렸고, 아이는 뒤돌아섰을 것이다.

찡했다.

아프면 마음결이 더 섬세해진다.

마음에 깊은 고통도 지나고 있던 참이었다

작은 친절들이 사람을 살고 싶게 한다.

 

의대 정원 법원 기각.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증원을 멈춰달라며 의료계가 낸 집행정지 신청 결과,

서울고등법원이 오늘 이를 기각 또는 각하 결정했다.

정부의 증원 계획이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는 대법원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재항고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달 말 혹은 다음 달 초로 예정된 대학별 정원 확정 때까지

대법원 결정이 내려지기는 어려울 것.다들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우울하다.

법원 결정에 기대한 바 적잖았던.

의료대란의 다음 행보는 어이 될는지.


삼거리밭 고추들 사이 줄을 맸다.

4월 말 풀섶에서 딸려왔지 싶은 진드기가 허벅지를 물고

그 자리가 이적지 가렵고.

기억만 질긴 게 아니더라.

팔의 보호대를 풀어서 바람 쐬고 씻어주기도 하고.

별일이 있지 않은 한 다만 시간이 필요한 골절 부위라.

 

 

나는 나이지만

나는 우리 조부모의 손녀고 부모의 딸이며

남편의 아내이고 자식의 엄마며

친구의 친구이고 이웃의 이웃이고

내 스승의 제자이고 내 학생들의 선생이다.

그 관계만큼 그 자리들이 내게 요구하는 것들이 있다.

나만 잘하고 산다고 무사한 시간이 아니기도 한다.

오늘 얼마 전 벌어진 한 사건에 대해 내가 사과문을 보내야 했다.

상대가 요구했던.

기어코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

왜 내게?

왜 내가?

퍽 화가 났다.

교사가 혹은 부모가 감당해야 할 것도 있겠지만

학생의 잘못으로 또는 자식의 잘목으로 무릎을 꿇어야 할 때

도의적으로 그래야 하더라도

사과에 대해 자신이 설득되지 않을 때,

그래서 치욕스러울 때

하지만 쓸 수밖에 없을 때

나는 쓰고, 나는 치욕스럽다.

이런 일이 없다면 생에 나는 얼마나 뻣뻣하게 허리를 세우고 있을 것이던가.

상처를 입은 이의 편으로 오직 생각하기로.

그리하려 겨우 사과문은 사과문이 되었다.

뜻하지 않는 일들이 얼마든지 우리 삶에 끼어들고

우리는 무기력하다.

그러니 엎드리라.

그리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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