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3.달날. 맑음

조회 수 365 추천 수 0 2023.05.02 23:59:23


거드는 손에 맞추다보니 저녁답에야 일이 되고는 한다.

학교 꽃밭에서 나무 하나 달골로 옮기다.

일전에는 가마솥방 창 아래의 키 낮은 단풍’이었고,

오늘은 교무실 앞 꽃밭에 있는 같은 종류의 단풍이었다.

둥그렇고 넓게 퍼진 가지를 위로 들추며 묶어주고, 분을 떴다(굴취). 뿌리 말이다.

관목일 경우 넓게 분을 뜨고, 교목일 때는 깊이 뜬다고.

녹화마대(현장에서 그리 부르는, 천연 식물 섬유인 굵고 거친 삼실로 짠 매트 혹은 자루)로 분을 감고,

마대는 검정 고무밴드로 감아주고.

작은 승합차의 트렁크에 묶어 차의 문을 연 채(열었다기 보다 닫을 수 없었던) 달골로 갔다. 

단풍을 수레에 옮기고, 아침뜨락의 달못 위로 가 구덩이에 넣다.

달못의 한가운데서 위쪽으로 보자면 좌우에서 두 단풍이 마주보는.

키 낮은 단풍이라고만 불렀지 어떤 종인가 챙겨볼 생각도 없이

지난 20여 년을 곁에 두었더랬다.

청희단풍인가 보다.

가로수나 조경수로 쓰이는 단풍과는 달리 왜성종이라고.

왜성종이라면 보통의 나무보다 키가 자라지 않는 성질을 가진 식물의 종류.

이 단풍은 가지와 잎이 촘촘하며 잎몸이 5~7갈래로 갈라진다.

가지가 위로는 적게 자라고 잎이 촘촘하게 옆으로 많이 나는.

 

밤, 건축현장에서 종일 일한 벗이 말했다.

절대노동!”

견주거나 맞설 만한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절대라는 낱말을 붙인다.

그는 최근 자신의 작업을 그리 일컬어왔다.

한계치라고만 말하기에는 뭔가 모자라는, 마치 세상 끝 경계까지 이르렀는 양 하는 거기.

쓰러지기 직전이라는 말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노동 총량, 노동 강도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순수하게 노동만 밀도 있게 담은 것 같은 그 말.

알겠는 거다, 그 말의 질감을. 

그의 마음이 내 마음 같았거나, 내 상황이 그의 상황 같아서일.

봄이 오고 슬슬 이곳 일들이 그러하다.

여름 한가운데서 절정을 이룰,

새벽이슬에 젖고 어둠이 등 떠밀어서야 들을 나오거나 별빛 달빛을 이고 일하기도 할.

 

여독이었던가 보다.

어른의 학교에서 남도를 주말에 사나흘 돌았고,

낮은 산들을 걷고 왔다. 밤에도 걸었더랬다.

낮에는 종일 졸음에 겨웠다.

책 한 쪽을 읽는 데도 몇 줄 못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다가 결국 책을 떨어뜨리기도.

거스를 수 없는 파도처럼, 4월이다. 4월에는 또 4월의 삶을 살아보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484 1월 24일 달날 맑음, 101 계자 여는 날 옥영경 2005-01-26 1939
6483 39 계자 열흘째 2월 4일 옥영경 2004-02-05 1930
6482 11월 3일 물날 쪼금 흐림 옥영경 2004-11-13 1929
6481 9월 16일, 바깥샘 도재모샘과 오태석샘 옥영경 2004-09-21 1928
6480 97 계자 네쨋날, 8월 12일 나무날 옥영경 2004-08-14 1928
6479 박득현님 옥영경 2004-01-06 1927
6478 계자 여덟쨋날 1월 12일 달날 옥영경 2004-01-13 1923
6477 8월 5-8일 이은영님 머물다 옥영경 2004-08-10 1920
6476 해맞이 타종식 옥영경 2004-01-01 1904
6475 새해, 앉은 자리가 아랫목 같으소서 옥영경 2004-01-28 1892
6474 3월 21-2일 주말 옥영경 2004-03-24 1891
6473 학교 문 여는 날 무대 오르실 분들 옥영경 2004-03-24 1888
6472 계자 열 사흘째 1월 17일 흙날 옥영경 2004-01-28 1888
6471 가족 들살이 하다 옥영경 2004-02-20 1883
6470 5월 5일, 우리들의 어린이날 옥영경 2004-05-07 1881
6469 2월 28-9일 : 영화 보다 옥영경 2004-03-04 1875
6468 9월 26-8일, 방문자 권호정님 옥영경 2004-09-28 1873
6467 97 계자 닷새째, 8월 13일 쇠날 맑음 옥영경 2004-08-15 1870
6466 계자 아홉쨋날 1월 13일 불날 옥영경 2004-01-15 1870
6465 영동 봄길 나흘째, 2월 28일 옥영경 2004-02-29 186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