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구름막이 드리워졌다. 그래도 낮 33도, 폭염경보 발효 중.
낼은 34도, 모레는 35도를 예보하고 있다.
창문을 열어두었다. 어둠이 쏟아졌고, 벌레와 새들의 울음이 뒤섞여 쓸려왔다.
바람을 맞이했다.
가볍게 입고 있던 터라 숄을 걸쳐야 했다.
밤이긴 하나 이 더운 날 사이 이런 바람이 있다는 게 신비했다.
하던 일을 멈추었다.
잠시 콩주머니 의자에 앉아 오직 바람이 닿는 대로 몸을 내버려두었다.
밥못에 녹조가 심각했다. 장맛비와 폭염이 원인일 테지.
물 흐름이 매우 느리니 더 악화될 테고.
온도라도 좀 내려주려고, 물도 좀 흐르라고
지하수를 연결해놓은 수도꼭지를 틀었다.
뜰채로 녹조류를 건져 올렸다.
이곳에서는 외할아버지 댁 논가에 있던 웅덩이가 늘 떠오른다.
시커멓던 그곳, 깊이를 짐작할 수 없어 지나가지 못했던 어린 날.
뭔가 나를 끌어당길 것 같아서.
꿈에도 자주 나타났다. 아직도 무서움증이 든다.
외가댁 해우소도 그랬다.
어린 날 사위들이 주로 교사였던 외가에는
같이 방학을 맞은 외사촌들이 다 모였고,
할아버지는 우리들을 위해 꽃밭 마당 한켠에 구덩이를 파주거나
어떤 땐 데리고 가 멀찍이 떨어져 볼일이 끝나기를 기다려주셨다.
시커먼 아래는, 무서웠다.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 미지의 세계가 주는.
안다면 낫겠다.
하기야 안다고 해서 꼭 그렇지도 않다.
그게 만들어진 세계란 걸 알아도
영화나 드라마는 우리는 끌어당기지 않던가.
미지(未知)라면 아직 알지 못하는. 그러니 언젠가 알 수도 있을.
알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몰라도 무섭지 않을 수 있으려면 그 상황을 냉정하게 좀 따져보면 낫지 않을지.
이성에 더 기대보는 거다.
밥못은, 내가 만들고자 했고, 만드는 과정에 있었고, 그 깊이를 알므로
한밤에도 그곳을 갈 수 있네.
그러다 어느 순간 상상의 세계가 만들어질 때도 있지만.
학교 뒤란 화목보일러 앞 풀들 좀 치워 주십사
학교아저씨한테 이르다.
웬만한 관목만한 쑥이 그야말로 쑥대밭이었다.
눈이 잘 안 가는 곳들은 내내 안 가기 쉬운.
가습이와 제습이 산책 덕에 뒤란을 자주 살피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