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13.물날. 흐리다 비

조회 수 1407 추천 수 0 2007.06.26 04:59:00

2007. 6.13.물날. 흐리다 비


“선물이에요.”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가방도 내려놓기 전 종훈이는
앙증맞은 반찬통을 내밀었습니다.
그림을 그린 듯이 빠알간 열매가 동글동글 모여 있는 게 훤히 비칩니다.
“앵두구나?”
“앞집에서 땄어요.”
저가 씻기까지 하여 담은 모양입니다.
물이 자박거렸지요.
이십여 년 전
난곡동 골짜기와 시흥동에서 아이들을 만나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가끔 껌 하나, 사탕 하나, 누가 사다 준 연필 한 자루를
가만가만 내밀던 그 아이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교사를 만들던 그들이었습니다.
산골에서 받는 아이들 선물이 또한 그러합니다.
예쁜 봄꽃 한 송이, 가을날의 물든 낙엽 한 장,...

‘찻상 앞에서’.
“요새 뭐하고들 노니?”
“흙더미에서 집짓고...”
눈이 닿지 않은 시간에 대한 그들의 움직임을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보면 죄 꿰게 되지요.
‘우리말글’시간이 이어집니다.
감잎은 아이들도 자주 마시는 차라
오늘도 감잎차를 만들겠다 하고 아이들은
곶감집과 학교 대문과 길가에 난 감나무에도 매달리다 왔지요.
“배 갈라요.”
하하, 가운데 잎맥을 자르며 아이들이 그러데요.
그러게요, 정말 생선 배를 가르듯 합니다.
아주 오래 전, 이제는 대학생이 된 일곱 살 준혁이가 그랬지요.
“옥,영.경, 선생님(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발음하며, 제 이름이 좀 어렵죠),
오늘도 초코파이 발려서 드실 거예요?”
머시멜로우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덮은 빵을 꺼풀 벗기듯 살며서 떼어내어 먹는 걸 보고
그는 생선을 발라먹는 걸 떠올렸던 겝니다.
아이들이 없으면 세상은 얼마나 무료할지요...
“이번 주는 읽기 숙제가 있네.”
권정생샘 생각이 어느 때보다 깊은 요즘이지요.
<하느님의 눈물>을 읽자 합니다.
다른 것을 잡아먹어야만 목숨이 유지되는 현실에
슬퍼하던 돌이토끼가 있었지요.
“하느님은 무얼 먹고 사나요?”
햇볕 한 줌 바람 한 점 이슬 한 방울 먹고 산다던가요.
“저도 그렇게 살 수 없나요?”
“이 세상 모든 이들이 너처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오면...”
하지만 아직 그런 세상은 멀기만 하여
하느님 안타까운 눈물이 돌이토끼 얼굴에 떨어졌지요, 아마.

달골 콩밭에 아침 저녁 들어갑니다.
하는 일이래야 콩 옥수수 고랑과 호박 구덩이를 돌고 돌아 밟으며
그냥 말이나 건네는 정도입니다.
싹이 오르고 있었지요.
감동이었더랬습니다.
“거 봐, 났지?”
오늘 아침
더 많이 땅을 박차고 오른 싹을 보며 아이가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러게.”
사다 먹은 단호박에서 씨를 빼 말리며 싹이 나긴 하려나 걱정했거든요.
유통과정에서 어떤 처리가 있었거나
혹은 보관과정에서의 냉장온도 같은 게 문제되지 않았을까 싶었던 게지요.
“왜냐하면, 봐요, 땅도 씨앗들을 품었다가 겨울을 나고 새싹이 나지요,
똑같은 거야. 호박이 씨를 둘러싸고 있었으니까
한겨울에도 땅이 씨앗을 보호하는 것처럼 그렇게 난 거예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 간단한 이치가 어찌 그리 걱정으로만 왔을까요.
그런데 계속 한여름날씨가 이어지고 있었지요.
가물어 어쩌나, 오늘쯤은 물을 대야하지 않을까 했지요.
그런데 비가 내려주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하늘 고마운 줄 더 많이 알게 되지요.
이 우주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지요.

‘공동체식구모임’.
포도잎에는 쌀뜨물과 막걸리를 섞어,
포도뿌리에는 오줌과 물이 비료가 안 되겠나,
요새 한창 하는 삼촌의 궁량입니다.
논에는 모도 많이 자랐습니다.
“맨 아랫다랑이만 풀이 많은데, 왜 그럴까...”
상범샘은 또 모가 큰 관심이지요.
아침마다 논둑을 밟고 있는 그입니다.
우렁이들이 벌써 새끼를 까 모에 알이 달려있기도 하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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