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21.불날. 맑음, 춘분

조회 수 882 추천 수 0 2023.04.10 23:46:58


춘분, 아름다운 날이다. 경칩과 청명 사이.

2월 바람에 김장독 깨진다듯 이맘 때 바람도 많으나

그조차 없었다.

이제 해가 길어져갈 것이다. 그러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런.

마치 새로 시작하는 설처럼 나이떡을 먹는 날,

본격적인 농사일이 시작된다고 마을에서 머슴떡도 먹는 날.

작년 춘분엔 꽃샘추위가 다녀갔는데...

볕이 좋은 방에서 이른 아침 해를 맞으며 해건지기.


젊은 날 암벽을 탔던 이의 집에서 낮밥을 먹었다.

피켈(곡괭이)과 바일(손도끼)이며 램프며 등산화며

옛적 부부가 함께 썼던 물건들이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이제는 뇌경색으로 한쪽 몸을 쓰지 못하는 남편과

첼로를 전공했으나 두부를 만드는 기계에 손이 껴 오른손가락을 다 잃은 아내가

식당을 하고 있었다.

 

황태 작업장으로 가기 전 황태가공 마을기업에 가서

통황태를 축여 큰 커터칼로 배를 가르고 펴고 누르는 작업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젊은 사람들은 없다.

황태를 거는 일도 내리는 일도, 가공하는 일에도 그렇다. 심지어 한국인도 드물다.

나이든 마을 아낙 넷이 일하고 있었고,

10년을 했다는 여든다섯 할머니는 변형된 손가락을 보여주셨다.

당신의 세월을 손으로 들었다.

내 몸도 내가 했던 일이 담겼을 테다.

 

황태덕장 작업이 며칠째인가.

어제 하루 쉬었으니 엿새라.

780미 자루 작업이었다.

9140, 8120미에 이어.

내일은 10180미를 채우게 될 것이다.

! 오른손 엄지 안쪽에 가시가 박혔다.

! 자꾸 건드리게 된다.

하던 자루 마저 하고 들여다보자 하고 또 하고,

집에 가서 뽑지 하고 또 하고,

그러다 아픔이 자주 등장하니 멈추고 빼기.

바늘까지 찾진 않아도 되었다.

그만큼 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

손톱으로 반대방향을 잘 가늠해 가시에 손톱 걸릴 때 쏘옥 뽑았네.

오늘도 덕목에 머리를 서너 차례는 기본으로 박고.

두 번은 아주 거세게 박아 소리를 안 지를 수가 없었더라.

 

저녁이 내릴 녘 마을 뒷길을 걸었다.

어둠이 묻어오고 있었다.

가을이 그리 가파르게 겨울로 흐르듯이.

네팔이 생각났다.

일찍 다음 마을에 닿아 해거름 녘 마을길을 걸었던.

저녁답에 산너머에서 또 머잖은 도시에서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한 선배들 건너온다 하기

아이구야, 오늘은 말렸네.

비린내가 가셔지지 않은, 고단도 비린내처럼 몸에 붙은 밤.

09시 덕장에 들어서고, 18시 덕장을 나선다. 낮밥 1시간.

정해준 건 아니다. 저가 정한.

하루 8시간 노동을 염두에 둔 움직임.

여기는 설악산 백담사 아래 용대리.

 

학교에서는 감자를 놓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606 눈비산마을 가다 옥영경 2004-01-29 2440
6605 노래자랑 참가기 옥영경 2003-12-26 2437
6604 '서른 즈음에 떠나는 도보여행'가 박상규샘 옥영경 2003-12-26 2430
6603 계자 열 이틀째 1월 16일 쇠날 옥영경 2004-01-17 2420
6602 가마솥방 옥영경 2003-12-20 2417
6601 주간동아와 KBS 현장르포 제 3지대 옥영경 2004-04-13 2412
6600 3월 15-26일, 공연 후원할 곳들과 만남 옥영경 2004-03-24 2400
6599 1대 부엌 목지영샘, 3월 12-13일 옥영경 2004-03-14 2395
6598 KBS 현장르포 제3지대랑 옥영경 2004-03-24 2385
6597 [2018.1.1.해날 ~ 12.31.달날]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18-01-23 2384
6596 대해리 마을공동체 동회 옥영경 2003-12-26 2380
6595 입학원서 받는 풍경 - 둘 옥영경 2003-12-20 2379
6594 물꼬 미용실 옥영경 2003-12-20 2375
6593 계자 열쨋날 1월 14일 물날 옥영경 2004-01-16 2373
6592 계자 다섯쨋날 1월 9일 옥영경 2004-01-10 2356
6591 지금은 마사토가 오는 중 옥영경 2004-01-06 2345
6590 4월 21일 문 열던 날 풍경 - 넷 옥영경 2004-04-28 2342
6589 6월 17일, 쌀과 보리 옥영경 2004-06-20 2331
6588 계자 여섯쨋날 1월 10일 옥영경 2004-01-11 2325
6587 4월 10일 흙날, 아이들 이사 끝! 옥영경 2004-04-13 232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