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5.물날. 비

조회 수 651 추천 수 0 2023.05.03 23:55:36


엊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곳곳의 산불도 주저앉혔다. 그렇게 또 사람이 살아진다.

몹시 더웠던 3월은 개나리 진달래 벚꽃들을 한 번에 피게 하더니

이 비에 또 내려앉는다.

아쉽지만 또 다른 꽃들이 천지를 덮으리라.

청명이고 식목일이었네.

 

한복을 하나 짓고 있다, 생활한복 말고 전통방식대로.

대신 일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도록 치마를 짧게.

오늘 저고리에 깃을 달고, 고름을 달다.

그리고 여기저기 시접을 뜯어냈다.

동정은?

파는 동정으로 다는 연습은 하다.

그러나 다시 떼어내고 치마말기를 만들었던 면으로

두 겹에다 안감까지 넣어 조금 딱딱하게 만들어

동정마냥 아주 달았다. 한 몸이게.

때때마다 동정을 다는 것과는 달리 붙인 채 바로 빨래를 할 수 있는.

동정만큼 도도한 멋은 없지만.

생각해보고, 그리 고쳐보는 일이 즐거웠다.

되더라. 게다 밉지 않더라. 아니, 곱더라.

동정만큼 뻣뻣하게 풀 먹인 모양새 아니어도

제법 세움이 되어 정갈하였다는.

 

 

화도 좀 내고 사시라.

어제 아침 낫질하다 담의 습격을 받았고

이도저도 못하는 걸음처럼 아주 꼼짝을 못하겠는 몸이었는데,

그래도 주섬주섬 입는 옷처럼 이러저러 움직이기는 했고,

한 번씩 아주 놀란 듯 아야, 소리를 내기도 했다.

간밤 몸을 눕히느라고도 애를 먹더니

누워서도 앓고

다시 일어나면서 어쩌지 못하고 끙끙대다 몸을 일으켜 움직였는데

두통까지 엄습했다.

(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나을 병이다.)

 

그래서였을까.

비도 내리고 차량 뒤쪽 카메라도 얼룩져 잘 보이지 않는데

막 통과한 굴다리에서 마주 오는 차량을 만나

양보를 하네 못하네,

당신 바쁘면 나도 바쁘고,

그러다 뒤에서 진입한 차량에서 그예 사람 하나 내려 상황을 정리하는데,

나도 덩달아 목소리를 잠시 키웠다.

그런데... 하하, 시원했다.

거기 무슨 악의들이 있고, 무슨 대단한 감정들이 있었겠는가.

그저 모두 바빴거나 사정이 있었거나.

오히려 홀가분함이 들었는데,

대개 화는 결국 자신의 기분도 망치게 하지만 이건 좀 다르더라.

 

그대도 가끔 그리 화를 내 보시기.

화가 안 나는 거라면 좋겠지만

일어나는 화를 너무 누르지는 마시라.

화를 좀 낸다한들, 괘한다. 우리 그리 나쁜 사람 안 된다.

 

결리는 담을 서둘러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될까

부황기로 피를 좀 뽑는 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6606 39 계자 사흘째 1월 28일 옥영경 2004-01-30 1825
6605 39 계자 나흘째 1월 29일 옥영경 2004-01-31 2081
6604 39 계자 닷새째 1월 30일 옥영경 2004-02-01 2087
6603 39 계자 엿새째 1월 31일 옥영경 2004-02-01 2058
6602 물꼬 홈페이지를 위해 오셨던 분들 옥영경 2004-02-02 1626
6601 39 계자 이레째 2월 1일 옥영경 2004-02-02 1818
6600 39 계자 여드레째 2월 2일 옥영경 2004-02-03 1842
6599 39 계자 아흐레째 2월 3일 옥영경 2004-02-04 2071
6598 39 계자 열흘째 2월 4일 옥영경 2004-02-05 1928
6597 계자 39 열 하루째 2월 5일 옥영경 2004-02-07 1855
6596 계자 39 열 이틀째 2월 6일 옥영경 2004-02-07 1794
6595 39 계자 열 사흘째 2월 7일 옥영경 2004-02-08 1782
6594 자유학교 물꼬 2004학년도 입학 절차 2차 과정 - 가족 들살이 신상범 2004-02-10 2183
6593 39 계자 열 나흘째 2월 8일 옥영경 2004-02-11 2121
6592 39 계자 마지막 날 2월 9일 옥영경 2004-02-12 1725
6591 2월 9-10일 옥영경 2004-02-12 2164
6590 '밥 끊기'를 앞둔 공동체 식구들 옥영경 2004-02-12 2293
6589 가족 들살이 하다 옥영경 2004-02-20 1878
6588 품앗이 여은주샘 옥영경 2004-02-20 2132
6587 불쑥 찾아온 두 가정 2월 19일 옥영경 2004-02-20 203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