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일이 날마다 정리하는 거네.
삶의 자리를 정리하는, 그래서 언제든 떠나도 남은 일이 없는 양.
밥 먹고 설거지하고, 입고 빨고 널고 개고, 뭔가를 하고 치우고, ...
오전에는 교무실과 옷방을 정리하고 나왔고,
오후에는 고래방 뒤란 창고를 뒤집기로 한 날.
물건이란 어느새 쌓이는 속성이 있고,
공간이 창고이고 보면 곳곳의 물건들이 다 거기로 바다처럼 모이게 되는.
허니 어느 틈에 질서를 잃어버리게 되는.
한 칸은 주로 책걸상이 있으니 확인만 하면 되고,
다른 칸은 끊임없이 보수와 보강을 하는 학교의 역사에서 남은 것들이 켜켜이 층을 이룬.
그간에 정리가 왜 없었겠는가. 그야말로 어느 결에 또 그리 쌓이는 거다.
버릴 게 나오고, 다시 쓸 게 그럴 수 있도록 가지런히 자리를 잡고,
그러면 공간이 남게 된다. 새로 또 들어올 수 있는 자리.
학교에 있는 창고용 컨테이너를 비워 달골로 올리자는 계획이었고,
그러자면 그 안의 것들이 담길 공간이 필요했던 까닭이 이 청소의 알속이었다.
자, 이제 컨테이너 안의 물건들을 정리해서 비워있는 공간으로 옮겨볼까?
나머지 것들은 학교 혹은 달골 곳곳 쓰일 자리로 보내면 되지.
아뿔싸! 컨테이너 크기가 다르다.
달골에서 농기구집으로 쓰이는 컨테이너랑 이것이 같은 것인 줄 알았고,
그 컨테이너 둘을 경사지에 양쪽으로 놓고 목공작업실을 만들 계획이었던.
그래서 컨테이너를 놓을 쇠뼈대를 여러 날 만들었던 지난주였다; ‘구두목골 작업실’
수정! 학교 컨테이너를 그대로 두고,
달골은 현재 있는 농기구 컨테이너랑 같은 것을 하나 구해서 나란히 놓기로.
어디서 어떻게 구하고 옮길지는, 다음 일은 다음 걸음에!
(목공작업실은 또 왜?
달골 시대의 거점이 될. 우리 손으로 대부분의 일들을 할 거니까!)
하지만 내친김에 정리는 계속된다. 도랑친 김에 가재잡기로.
정리란 건 지나간 시간을 갈무리하는 일이지만
한편 다가올 시간을 맞는 일.
잘 쓰자고 정리한다.
물꼬가 끊임없이 하는 말을 다시 되내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양편 가운데 한쪽만 먼저 정리키로.
겨울 난로도 분해되어 이곳에 들어와 있다.
학교아저씨가 하는 일이라
그 물건이 어디로 들어가 다시 겨울에 어떻게 나오는지 거의 몰랐던.
들어가 있는 물건들은 그것을 다룬 사람들의 시간을 또 이해하게 하는.
‘때때마다 당신이 이 일을 하시는구나...’
20년 전의 물건 하나는 쓰임 없이 여태 포장상자 그대로 있기도.
편지와 함께 나왔다. 뜯어서 읽기야 했겠지만.
도연이네였다. 다시 고맙다.
한번 쓰고 둔 것이라고, 이 골짝에서 더 필요하겠다고,
가스통까지 실려 왔던 히터였다. 이웃에서 실어갔다.
2001년 세 해의 연구년이 있었고,
세 살 아이를 데리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면서 시작되었던 세계의 공동체 방문 때,
서울 살림은 기락샘이 안고 있다
그조차 시카고로 박사과정을 떠나면서 영동으로 내려왔다.(나도 없이 샘들이 옮겼던. 다시 고마운 그 이름자들!)
2003년 돌아와서도 열지 않았던 상자들이 있었고,
여직 안 썼다면 지금도 아쉽지 않을 것들이 대부분일 테고,
예상대로 많은 물건을 버려지는 편으로 보냈다.
뜻밖의 것들이 나와 지난 시간 앞에 나를 데려가기도.
예컨대 대학원 학생회가 준비한 <자본론> 강의를 들었던 수강증이 나오기도.
아, 그런 걸 공부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 세월이 갔다. 한 시대가 떠났다.
늙었으나, 그때도 좋았고, 지금도 좋다.
지금은 우리 생애 가장 젊은 날,
이 순간도 아름다웁다.
그대도 그러신 줄 아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