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 아이의 심리평가보고서가 들어왔다.

물꼬의 상담 대상은 아니었으나 계자며 교육활동에 드나드는 아이.

학기 초에 아이의 담임교사로부터 심리검사를 받아볼 것을 제안 받은 부모였더랬다.

그 아이를 알고 있던 것 너머의 것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딱 검사가 가진 그 기능만 수행한 듯한(당연하기도 하겠지만),

뭔가 너무 평면적인 것 같아 아쉬웠다.(한편 뭔가 정리된 느낌이 있기도).

검사지가 담지 못하는, 양육 혹은 교육시간을 가진 이들이 보는 아이의 여러 면도 있을 것.

물꼬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더 깊이 보고 그 아이의 좋은 안내자가 되기로.

 

아침부터 이장님이 찾으셨다.

내일 달골 오르는 길에 공사가 있을 거라고.

지난 여름계자 한가운데 왔던 큰비는 길을 파헤치고 갔더랬다.

다리를 지나 올라오는 쪽의 양 가로 아주 깊게 패인 수로.

한쪽은 자칫하면 낭떠러지, 다른 쪽은 혹여 차바퀴가 빠져 움직이지 못할.

어느 구간을 하는 지 잘 모르겠지만,

하루면 일이야 끝날 텐데, 콘크리트가 양생하는 시간동안 차량 운행이 어려울 거라는.

작업반장과 통화. 내일 아침 8시부터 시작한단다.

걸어 오르내리는 일이야 그리 일일 것 없다만

짐이 가벼우면 좋겠지.

먼 출장도 있는데...

내일 내려갈 때 미리 챙길 짐을 좀 실어야겠네.

 

산골 들어가 집 짓고 원예를 가르치는 한 분이 그런 말씀하시더라.

사람들이 그러잖아, 돈으로 사는 게 더 싸. 나는 그 말이 제일 싫어!”

키우며 얻는 즐거움을 어떻게 돈과 견주겠냐고.

, 나도 가끔 그런 말 한다. 심지어 이곳에서 날마다 움직이며 사는 일이

나를 사람답게 만든다 여기는 사람인데도.

그저 웃자고 하는 말이기도 하고, 우리가 농사며들에 참 서툴다는 말로도 쓰는데,

냉정하게 그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기도 하기에 썼는데,

무겁게 받는 이도 있겠구나 싶었다. 함부로 할 말이 아니겠다.

 

오후에 식구들과 풀 일을 했다.

바위 축대의 바위들 사이 풀을 뽑고,

블루베리 나무 사이들을 맸다.

지느러미길 언덕 쪽의

플라스틱꽃을 만들어 꽂았던 곳은 풀에 묻혀 흉물스러웠다.

꽃을 빼고 풀을 정리하고 다시 꽂다.

햇발동 앞 주목 세 그루 가지도 치다,

모양을 잡아주고, 다시 날 가지들을 그려가면서.

바위 축대 위 철쭉들도 가지를 다듬어 주었다.

아침뜨락으로 철망을 열두어 개 올리기도 했다.

미궁 동쪽 너머로, 밥못 개나리 울 너머로,

그리고 북쪽 울타리 쪽 덤불 속으로 드나드는 멧돼지와 고라니를 막아보자는.

세워놓지 못하더라도 그런 것들이 있으면 드나들기 불편할 테니까,

불편하면 덜 올 테니까.

북쪽 경사지 위는 가시덤불 많아(그 아래 작은 구멍으로 그들은 쉬 오갈 테지만)

작업이 쉽지 않았다. 제법 시간을 들이고 가시에 찔린 뒤에야 철망 둘을 놓았다.

마지막으로, 뽕나무 가지 아래 바위를 끼고 실도랑 휘돌아나가는 거기,

바위 아래로 물이 스몄다.

실도랑에서 샌 물이 바위로 들어간.

오늘도 괭이질하게 되었네.

실도랑을 좀 더 파주었더니 바위에서 새어나오던 물이 멎었더라.

 

삼거리집에서 밤늦도록 작업이 있었다.

보일러와 수도관 수리. 몇 해 비어있던 집이었다.

현철샘이 들어와 하기로 했던 일.

좀 일찍 시작하지 그랬냐고? ... 이곳의 일들이 그러하다.

안에 있는 이들이 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바깥에서들 손발 보태러 오자면 생업을 챙겨야 하고, 오는 시간이 걸리고, 그런.

그곳도 현장이 바삐 돌아가는데, 연휴 끝에라도 여기 일을 매듭지어놔야 마음 가벼울.

4시에야 시작했고, 더뎌질 듯하여 저녁을 먹고 이어가기로 했고,

한가위 끝에들 모인 거라 느긋한 저녁이었고,

그리하여 저녁 8시도 훨 넘어 작업이 이어졌다.

그 집이 돈 들이지 않고 주인장이 어찌어찌 손을 봤던 것들이라

손보는 작업이 쉽지 않다.

창고만 해도 북카페로 만들어보려는데,

그 바닥이 아주 경사져 있어 믹스트럭이 한 트럭도 더 와야지 하고 가늠한다.

봄은 돼야 일이 되겠지만.

두 채의 삼거리집,

작은집은 들어있던 기름으로 보일러가동, 큰집은 작은집 기름을 옮겨 시험가동,

무사히 돌아갔다.

수돗물도 무사히. 하여 욕실 청소를 하고 나왔네.

 

퍽 쌀쌀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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