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2.불날. 비 개고 흐린

조회 수 500 추천 수 0 2023.12.24 23:54:45


물소리가 골짝에 찼다. 멧골이 밤새 큰비를 건너왔다.

 

겨울90일수행 중.

해건지기를 끝내고 아침뜨락으로 갔다.

비 많았고,

논두렁 보러가는 농사꾼처럼 밥못 수위를 보러갔다.

달못 물관 밸브를 더 열어두어야겠다.

달못에서 나오는 물을 받는 대나무수로로

콸콸 넘치게 흐르는 물이었다, 이 겨울에!

 

‘12.12’이네.

마침 그때의 군사 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

물꼬 식구들은 김장하던 날 밤 읍내에서 보고들 왔댔다.

, 역사를 이리 가르칠 수도 있더라.

세대 통합이 이렇게도 이루어지더라.

아직 그것을 체험한 세대가 살아있는, 그야말로 현대사라.

그리고 들어선 군부독재의 세월에 대학을 다녔다.

저항하는 역사 현장 한가운데를 지났던 한 세대라.

물론 영화를 잘 만들지 못했다면 세대가 어깨 겯는 이런 일까지 끌어오지는 못했을.

고마워라, 창작자도, 연기자들이, 뒷배들도.

 

늦은 저녁, 마을 부녀회 일로 통화를 하다가,

부녀회 사람 하나 올라오다.

달골에서 사람을 맞는 일은 드물다.

학교 가마솥방에서 대체로 차를 달이는.

마을 부녀회 결산을 위해 두어 가지 의논이 필요했던.

덕분에 마을 소식이 가장 늦게 닿는 물꼬에 마을 소식이 넘치게 들리게 된.

정서적으로 거리가 멀고 생활로서도 서로 접점이 거의 없는데,

부녀회가 매개가 되어 만남이 이루어진다.

자신의 구미에 맞는 사람이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것은 아닐 거라.

그렇게 또 우리는 삶을 확장한다.

 

집안에 경찰 하나는 있어야 하고, 변호사도 하나 있어야 하고, 의사도 있어야 한다,

어른들이 더러 농을 하시더니

병원이란 게 그 안에 쓰레기통 비우는 사람만 알아도 도움이라더니

마침 식구 하나 거기서 일을 하니 예약 하나도 이리 수월하다.

아침저녁 두어 시간씩은 통 활자를 볼 수가 없다.

계자 전에 아무래도 불편을 없애야겠다 하고 안과 예약.

(물꼬의 삶은 여름과 겨울은 계자를 중심으로,

한해는 6월 연어의 날을 중심으로 도나 보다)

병원 가는 거, 그런 거 참 안 된다, 미룰 때까지 미루다 가게 되는.

내일 도시를 다녀오기로.

 

시집이 하나 왔다, 막 출간된.

몇 개 읽었고, 밀쳐두었다.

내 취향은 아니니 단번에 다 읽게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타부타 못한다.

내가 쓰지 못할 때 그는 쓰고 있었고, 심지어 시집을 냈다.

이것이다. 하는 것, 끝까지 하는 것!

그리고 내 손에서 떠나보내는 것이다.

“(그대가 하려던 것들을)하시라!”

내가 하려던 것을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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