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16.흙날. 맑음

조회 수 650 추천 수 0 2024.04.03 00:00:00


엊그제 이른 아침에 받았던 글월 하나는 이 아침에도 따라와 아리다.

찡했고, 미안했다.

어쩌자고 이 정부는 국민을 이리 내모는가.

앞뒤 없이 툭 하고 의대 증원 2천명 정책을 던지고

(그 결과는 의료 영리화와 건보료 인상과 전공의의 열악한 처우와 필수의 지역의의 절단일 텐데),

전공의들이 사직을 하고,

남은 사직하지 않은 전공의는 물론 전임의며 교수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간호사의 업무 강도도 높아졌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절대적인 여론은

떠난 이들을 헤아려보기 보다, 정책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보다,

떠난 전공의들을(의료 인력 14만 가운데 겨우 1만도 안되는) 향한 강도 높은 비난의 화살들.

떠난 이들도 엎드려 있는 것밖에 길이 없고,

남은 이도 못살 일이고,

보는 이들도 아프고,

비난하는 마음인들 어디 좋은 기운일 것인가...

 

나는 깊은 멧골의 작은 배움터의 교사이고, 한 필수의료 전공의의 엄마고,

아끼는 학생이 자라 간호사가 되었으며, 필수의료 전문의의 선배이고,

그리고 전공의가 떠난 일터에서 수면을 극복 못하고 급기야 휴가서를 낼 수밖에 없었던 벗의 친구다.

엊그제 이른 아침 응급의학과 의사인 후배의 글월이 닿았더랬다.

야간근무로 수면리듬이 깨지면서 무기력과 우울, 충동적인 말과 행동들의 반복이 잦자

그는 몇 해 전 야간 근무를 안 해도 되는 곳으로 옮겼다.

코로나 이후 병원의 배후 진료가 무너지면서

그래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할 줄 아는 게 이 뿐이라 해왔다고.

그러다 몇 주 전 전공의들이 병원을 나가고 다시 야간근무를 시작했고,

밤을 꼴딱 새고 그날 새벽 과장님께 휴가를 가야겠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못할 짓이다. 이런 시국에 말이다. 내가 빠지면 동료들이 힘들 것이지만 내가 죽을 것 같은데 어떡하겠는가.’

그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쳤다.

사태가 하루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응급의학과 의사라는 내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을 버릴 수 있다

제발 빨리 끝나라.’

이러면 또 나간 전공의들을 욕할 것이다.

제발 의료계 막내인, 아직 도덕적 해이 범주에 있지도 않은,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그저 주 100시간을 넘게 열악하게 일했던 노예들을 욕하지 말라.

몇 억씩 버는 의사가 그들이 아니다.

화살은 이런 사태를 초래한 정부를 향해야 할 것이다.

시작했으니 해결도 거기서 해야 할 것.

어디로 돌을 던져야 할 지 좀 알고나 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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