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한 도시에서 이른 아침 사전투표를 했다.
나선 걸음이라 아침 수행으로 걷기를 골랐다.
가끔 학교를 가거나 출근하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옛날에는 (사람들이)엄청 많았어.”
한 사람이 그리 증언했더랬다. 요새는 길에 다니는 사람이 드물다고.
“다들 차를 타고 다닝께.”
그래서 도시 한가운데서도 호젓했다.
매화도 벚꽃도 목련도 수수꽃다리도 한창이었다.
지난 주말에도 이곳에 있었다.
나무들이 싹을 틔우는구나 싶더니만, 아, 저 촉들!
벌써 연초록이 제법 넓혀졌다.
좋은 일이 다가올 것 같은 봄날, 선거가 4월에 있다는 게 또 다르게 다가왔다.
기대에 차는.
겨울을 걷어낸 연두의 물결이 새 세상을 향하고 있었다.
4월이다!
어른의 학교에서 소리공부가 있었다. 가르치고, 배우고.
나설 때 한 동료가 김치와 생선을 내밀었다.
고흥이 머잖은 그곳인데,
바닷가에서 난 것들로 고흥 바닷가에서 인척이 때때마다 먹을거리를 보내오면
그는 또 물꼬의 큰살림을 살펴 그리 내 차에 실어준다.
반찬거리나 김치는, 결국 이곳의 손발을 덜어주는 것이니 더욱 고맙다.
누가 내게 그리할 것인가, 그러면 찡해지면서
친정집 다녀오는 딸자식 마냥 하냥 좋아져서 먼 길이 한달음이 되어버린다.
물꼬는 또 무얼 나눠드리려나...
시끄러운 하루였다. 더 시끄러울 내일일수도 있을 것이다.
의대 증원 2천 명으로 시작된 전공의 사직물결이 2월 19일부터였으니 며칠째인가.
사직한 전공의들은 오직 엎드리고만 있었다.
그 속에 어제 대통령과 전공의 비대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이 있었는데,
의료계는 밀실 협의라 전공의 내부에서들 반발했고,
비대위원장은 몇 시간 뒤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습니다.’는 한 문장을 내놨다.
그런데 오늘 그것에 견주어 한 사직 전공의가
비선실세라고 의구심을 일게 하는 천공에게 만남을 청한 기사로 소란스러웠다.
만남을 제안하기 전 그 소식을 먼저 들었다. 반대했다.
무슨 기성정치인들처럼 얇삭한 행동을 하느냐,
측근들이 제안해도 정말 그리 하는 게 좋을지 곱씹어보시라,
이건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거리라 생각된다,
좀 더 우직하고 젊은이다운 방식을 택하기 바란다, 기교가 아니라,
천공 건으로 얻는 게 많을지라도
청년은 청년다운 아름다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
그런 까닭들을 말했다.
총선을 이틀 앞둔 상황이라 그 여파가 적이 걱정스러움 없지 않았고,
혹 환자들의 마음이 어떨까 우려도 있었다.
시간 시간이 급박한 분들에겐 이게 무슨 짓인가 야속하실 수도 있겠고.
‘젊고 정도를 가는 의사가 되어야 함.
정치인들처럼 행동하면 안 됨,
나중에 설사 성치를 진짜 하기위해서라도 그래야 함.’
아비도 그 안을 말렸다.
하지만 결국 제안은 던져졌다.
왜냐면,
그건 젊은이다운 발랄한 그들 식의 의사표현이었으니까.
재미난 이벤트랄까.
진지하게는 누가 지금 정치의 실세인가를 묻는 거였고,
희화화였고 풍자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어떻게 읽고, 또 의료계 안에서는 어떤 비판들이 이어질지.
언론을 끊은 지 오래였던 이 멧골은 요새
눈뜨면서 기사를 보고, 하루에도 몇 차례 들여다보고,
자기 전에도 점검하고 자고 있다.
우리 집 아이도 전공의 사직물결에 함께하고 있어서리.
남도에서 일을 끝내고 우리지역 읍내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왜 그 생각을 아니 했을까. 읍내에도 병원이 있고, 전문병원이 있는데.
도저히 팔을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리하여 의사인 아들이 어디를 가라 알려주었을 때야 병원을 가기로 한.
어깨는 팔로, 목은 척추로, 척추는 고관절과 좌골로 영향을 주고 있었다.
아직 수술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동안 덜 쓰며 다스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