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라, 날.
여러 날 흐리거나 비 내렸더랬다.
어제 읍내를 다녀오며 모종들을 좀 들였다.
고추모종을 심었다. 내 팔은 아니었다.
어버이날. 마을부녀회가 마련한 경로잔치.
여기서 우리는 마을 부모님들을 챙기고,
내 부모 계신 곳에선 그곳 사람들이 당신을 챙길.
이른 아침부터 마을회관에 모인 부녀회원들.
한 손으로 수저나 놓고 하다가
바닥에 앉아 한 엄마와 부침개를 부쳤다.
한 숟가락씩 놓고 조그맣게 부치는 거라 무리 없이.
당신이 이 마을에서 끓여먹는 머윗국 요리를 들려주었다.
대처 나가 사는 딸이 오면 꼭 끓여준다는.
잘 들어두었다. 밥상에 오르기도 하겠지.이 집 과수 일할 땐 저 집도 과수 일.
저마다 바빠 이럴 때나 얼굴 본다.
(그래서도 <아나스타샤>의 가원을 되짚어보는. 1ha 가원에
구역마다 다른 작물을 심고 혼자 한 구역마다 돌볼 수 있도록 하는.
읽은 지 오래 전인데, 뭐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마을 사람들은 면민 체육대회 때를 계획하고,나는 마주앉아 있던 반장님과 한참을 농민회 이야기 나누다.
내일 저녁 달골 뒤란 현장에 대해서 조언을 좀 줘 보십사도.
마지막엔 농민회 후원도 결정하였네.
물꼬가 후원하는 단체만도 이제 열이 되었다.
우리도 후원으로 돌아가는 곳,그런 지지와 연대가 힘인 줄 아니까.
오후에는 빈백에 앉아 오래 쉰다.
새 한 마리가 툇마루 안까지 날아들었다.
작은 집으로 들어오기 좋은 아주 작은 새.
그가 무슨 색깔인지 안에서 알 수는 없었다. 반투명 유리 너머였다.
그의 움직임을 오래 보다가
깁스 압박감이 심해서 붕대를 풀어야 했다. 반깁스라 다행.
혼자 감을 수 있고 말고는 다음 일.
사람 하나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 이렇게 꼼짝거리게 되면 다시 통 깁스(대신 길이는 짧은)를 하게 된다는
의사의 경고가 생각났다.
그래서 일주일마다 상태 확인을 위해서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는데,..
5월 빈들모임을 끝내고 우기가 시작되는 남부 아시아를 다녀와야 한다.
깁스를 풀지 못하고 갈 수도.
이 채로 빈들모임 밥을 짓는 거야 어려울 게 없는데.
밥이야말로, 또 물꼬 부엌이야말로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밥을 해낼 수 있는 아주 오래고 익숙한 공간이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비 온다?
습한 상황으로 가는 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되는 대로 어찌 또 해 볼...
사는 일이 늘 그리 되는 대로 어찌 해보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