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로 팔이 원활하지 못하면서
학기 가운데 하는 상담 일정들이들이 6월 혹은 다른 때로 밀고,
그래도 들일은 사람 속도를 따르는 게 아니니
감자밭 마늘밭 풀을 매고.
대처 식구가 들어와 깁스한 팔 대신 움직여준다.
기거하는 공간에 청소기가 돌아가고,
비로소 몸도 좀 씻고,
제 빨래도 하고,
던져둔 채 버려진 공간 같던 책상도 정리하고.
내일 정형외과 들리면서 그 걸음으로 도시로 좀 나가 있기로 한다.
환자가 지내기엔 쉽지 않은 멧골.
해서 한동안 비울 것이라 더욱 꼼꼼하게 청소하는.
길을 나설 때면 그리 한다.
다시 돌아왔을 때도 좋지만,
이 집을 나서 내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도서관에서 한 가방 빌어다둔 책 가운데
한 젊은 작가의 책 하나에서 본 문장 ,
‘자기가 초라해 보일 때 괜히 엄마를 미워해 보는 것은딸들이 자주 하는 일 중 하나였다.’
내 삶에는 엄마가 있었던 시간이 많지 않아서인지
그런 생각이 익숙치는 않았는데
아, 자식들이 그럴 수 있겠구나, 새삼 생각해 보다.
나도 자식을 낳고 키웠다.
부모라서, 부모란 이름만으로 부모는 죄가 크다...
자식을 키우는 건 영원한 짝사랑이라고 하던가.
몇 해 누드모델을 했다는 한 청년의 기록을 본다. 집중해서 잘 읽은 글은 아니었다만.
깁스에 갇힌 팔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쓰기는 물론이고 읽기도 자꾸 거끌거리는 거라.
그는 일터에 일찍 도착해 일할 때 배경으로 틀어 놓을 음악을 선곡해두었는데,
맨 몸을 우습거나 좋아하게 만들지 않는 소리들을 구별하게 되었다지.
사랑하는 남들에게서 발견한 자신만 알기 아까운 이야기들을 잘 전하고 싶었다는 그는
그러려면 잘 묻고 잘 들어야 했고,
그리하여 풍성한 질문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한다.
잘 쓰는 사람은 잘 듣는 사람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