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은 삼거리 마늘밭에 풀들을 뽑고 있었다.
손톱을 깎았다.
그걸 또 쓰고 있다.
그런 것이 문자가 되는 날이 있다.
성한 한 손으로 다른 쪽을 깎고,
다른 쪽은 타인의 손을 빌린다.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던 시간이 떠오른다.
혹 살점을 찍게 될까 어깨가 잔뜩 뻣뻣해졌던.돌볼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떠날 수가 없다.
세상을 버릴 수도 없다.
아이를 돌보며 한 바다를 건너왔던,
엄마가 되어본 귀한 시간이 있었다.
그 마음이 아이들을 떠나지 않게 했다.
아이들을 만나는 세월에 세상이 다 변해도 지키고픈 그 마음.
그대에게.
안부를 물어주셨고나.
응급실을 두 차례나 갔더라는 소식이 먼 그곳까지 닿았네, 그려.
무탈함이 어떤 것보다 귀함을 알게 되는 날들일세.
떠난 이가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서로 인사를 나누게 하는 빈소의 덕처럼
병상이 또한 그러하네.
이런 날이 있으니 인사를 또 나누게 되이.
고마움... 참 사람살이 이치가 늘 놀라운.
이른 아침부터 정형외과를 다녀왔네.
중간점검.앞서의 깁스를 풀고 어깨 아래 팔뚝까지 깁스형 보호대를 착용하게 돼
옷이랑 팔이 일체형이 되었네.
전보다 움직임이 더 둔해졌을세.
이러면 이런대로 생이 흐르고,
움직여 얻는 것들 못잖게 움직이지 않아 얻게 되는 것들이 있을.
오늘은 이런 문장들을 쓰는 중이었네.
‘소비만 일어나는 날을 보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이 간다. 맥 없이 간다.
이렇게 살아도 한 생이 갈 거다.
뭘 하지 않으면 쌓는 게 없을 거고
쌓아지는 게 없으면 불안으로 처리되던 시간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냥 흘러가도 괜찮다. 나이 덕이라고 하자.
이러다 무엇을 하게 되거나 영영 하지 않게 되거나.
그래도 한 생은 흘러갈 것이다.
세상은 악도 적지 않아서
덜 나쁜 사람들이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악적으로 훨씬 더 넓어질 것.
덜 나쁜 사람 쪽에 서야 더 괜찮은 방향으로 세상이 지속되지 않을지.
그래서 이 시간이 지나면 또 뭔가 순한 방향에 보탬이 되는 걸음을 걷고자 할.
아마도 그건 사랑일 것이다.
앞으로에 대한 기대가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를 앞지른다.
그러면 사람은 또 산다.’
그렇게 살고 있네, 살 것이고.
그대도 그리 살아서 우리 좋은 날 보기로.
부디 건강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