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학교 뒤란에, 오늘은 운동장에 예취기가 돌아갔다.

 

통신문을 보내야 하거나 답메일을 써야 할 때

부름말에서부터 망설인다.

특히 학부모 혹은 부모님이라고 써야 할 때

나는 언제나 주춤거린다.

우리는 모두 부모가 있다.

그러나 ‘실제하지 않기도 하잖은가.

 당연하지 않은 전제 때문에.

그래서 공식적이고 무난한 호칭으로 시작하다 고민하며 다시 쓰게 된다.

보호자 정도로 낱말을 골라 후퇴하는혹은 양육자로.

행여 의도하지 않은 상처가 되면 어쩌나 하는 조심스러움.

말을 아름답게까지 하지 못하더라도

마구하지 않으려 애쓴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말에 동의하므로.

나를 함부로 여기지 않음이고

당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부름말은 관계를 규정하게 되기 때문에도 입에 여러 차례 굴려본다.

대개는 물꼬의 흔한 호칭인,

우리 모두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의미에서 샘이라 부르는,

OO샘으로 귀결되는.

고민 끝에 부르는 그 호칭은, 그래서 그저 손쉽게 부르는 낱말이 아니게 된다.

 

도시에 나와 있다.

5월 교육 일정은 멈춰 있고,

빈들모임은 진행하기로 했다.

낮밥도 밖에서 먹었고, 저녁도 그랬다.

도시에 있으니 이런 생활이 또 가능하다.

하루가 그렇게  지났다.


전화가 울렸다.

물꼬의 품앗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라 어느새 같이 나이를 한껏 먹어버리면

학생이라기보다 벗에 가깝다.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들어왔다

받지 않았다받을  없었다

어쩌면 얼마 전 우리를 휩쓸었던 한 사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바쁘거나 아프거나 마음이 힘들거나 그쯤으로 짐작할.

지금 연락이 닿지 않는 순간이 자신 안에서 새로운 마음들을 만들지 않는 관계가 고맙다.

고마운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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