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30.달날. 맑음

조회 수 1325 추천 수 0 2006.10.31 12:16:00

2006.10.30.달날. 맑음


아이들이 시를 읽고 외고 그리고 썼습니다.
시만큼 말이 지닌 어감을 잘 살려내는 장르도 없지 싶습니다.
아름다운 모국어를 살려내는 것은
오늘날 중심화 되어가는 지구 위의 삶에서
탈중심화 지역화로 가는 한 길이기도 하겠습니다.
또한, 모국어를 지켜낸다는 것은 민족주의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뿌리와 줄기의 혼을 지켜나가는 일이겠습니다.
이미 시어 같은 모국어로
아이들은 가을날의 마음을 담고 있었습니다.
흔히 동시라고 불리는 어른들이 쓴 시나
그 어른들의 시를 흉내낸 시 쓰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마음에 감동의 물결이 일렁인 순간들을 옮기고 있었지요.

구미를 다녀오니 자정이 다 되었습니다.
밖을 향해 가지런히 놓인 신발들이 늦은 식구를 맞아줍니다.
아이들이 저들끼리 한 한데모임을 기록으로 남겨놓았습니다.
시를 써서 좋았다 하고 춤이 재밌었다 하고
읍내에서 돌아올 때 암벽타기도 했다 합니다.
학교에 남은 류옥하다는
돌탑 앞에 있던 고양이 무덤이 황폐해져서 2년 만에 보수를 해서 기뻤다네요.
지금 아이들 책 세계는 탐정소설류들입니다.
코난 도일의 작품이며는 재미뿐만 아니라
명작으로 불리는 만큼 문학적 성과로서도 뭐라 덧붙일 말이 필요치 않겠지요.
그런데 기록에 없던 항목이 하나 있습니다.
‘건의사항’.
수돗물을 잘 잠그자,
남자들은 변기뚜껑을 올리고 오줌 누자,
화장실 불을 끄고 문 닫고 신발정리를 하자고 써놓았네요.
일상에 필요한 것들도 스스로들 잘 자리를 잡아갑니다.
대견들 합니다.
11월엔 호숫가나무가 물날 저녁에서 쇠날 아침으로 옮겨갔으니
그 시간을 역시 아이들끼리 꾸리는 한데모임으로 두었으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자꾸 스스로들 하는 영역을 넓혀가는 게지요.

봄도 아닌데 봄날을 노래한 시 한 편이 마음에 서성입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나무는 또 그렇게 이파리를 내는 것이었지만
이렇게 살 수도 없는 짓이라고
꽃들은 또 그렇게 지는 것이었지만
날 때부터
상한 이마 달고 나온
내 뜰의 이파리들아,

어디 흘러갈
낮은 데도 없는 봄밤에는
열에 겨운 목숨들의 꽃장이 선다”

; 이안의 ‘봄날-꽃場’ 가운데서

고속도로를 달리며 듣던 음악들이
죽어도 좋을 만치 가슴을 울리더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자살을 꿈꾸는 이들도 있다더니...
가을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다 가을 탓인가 봅니다.
눈이 부시다 못해 온 몸이 다 부신 날들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426 2024. 2.10.해날. 힘찬 해 / 설 옥영경 2024-02-13 555
1425 2023.11.14.불날. 흐림 옥영경 2023-11-25 555
1424 2023.10. 2.달날. 맑음 옥영경 2023-10-17 555
1423 2019. 6.30.해날. 오후 갬 / 남북미 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다 옥영경 2019-08-14 555
1422 10월 물꼬스테이 여는 날, 2019.10.19.흙날. 맑음 옥영경 2019-12-05 554
1421 2019. 6. 9.해날. 구름 조금 옥영경 2019-08-05 554
1420 2024. 1.20.흙날. 비 / 발해1300호 26주기 추모제 옥영경 2024-01-30 553
1419 2023.11.13.달날. 맑음 옥영경 2023-11-25 553
1418 ‘2023 연어의 날’ 여는 날, 2023. 6.24.흙날. 맑음 옥영경 2023-07-26 553
1417 2020. 1.29.물날. 흐린 사이 간간이 흩뿌리는 비 옥영경 2020-03-04 553
1416 2020. 1.11.흙날. 맑음 / 165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20-01-22 553
1415 2019.12.19.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0-01-16 553
1414 2019. 9.19.나무날. 맑음 / 낭독회, 그리고 하루 옥영경 2019-10-30 553
1413 2023. 8.19.흙날. 구름 꼈다 맑음 / 2023 멧골책방·1 여는 날 옥영경 2023-08-21 552
1412 167계자 닷샛날, 2021. 1.21.나무날. 청아한 하늘 지나 빗방울 떨어지다/ 푸르나가 사는 마을 옥영경 2021-02-09 552
1411 2020. 4. 7.불날. 맑음 옥영경 2020-06-01 552
1410 2020. 3. 3.불날. 맑음 옥영경 2020-04-07 552
1409 2019. 9. 6.쇠날. 흐리다 비바람 옥영경 2019-10-16 552
1408 2024. 3.25.달날. 비 / 그대에게 혹은 내게 옥영경 2024-04-10 551
1407 2023.11. 8.물날. 맑음 옥영경 2023-11-19 55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