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20.물날. 맑음
지난 해날, 준비 없이 눈이 내렸지요.
달골에서 아래 마을로 내려올 짐을 꾸리기 전
매듭잔치를 하러 내려왔던 길로 그만 발이 묶여있었습니다.
오늘 달골에 올랐지요.
한 학기를 살았던 짐이
젊은 할아버지랑 류옥하다랑 제가 한 꾸러미씩 짊어지니 전부였습니다.
겨울옷가지들과 책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요, 사는데 정말 그리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랍니다.
두 해를 여러 나라 옮겨 다니며 지낼 때도
아이랑 각각 여행용 가방 하나에 배낭 하나였지요.
다 살아졌지요.
다 살아집니다.
종훈이랑 류옥하다는 낮 열한 시쯤 나흘 서울 길에 나섰습니다.
종훈이네가 할머니댁 가는 걸음에
하다를 데려가도 되느냐 엊저녁 물어왔지요.
어디 초대받은 일을 앞두고 있던 하다는 장기판 앞에서처럼 고민하더니
서울로 따라나선답디다.
기락샘도 지난 달날 새벽 중국에 간 터라
저녁 밥상에는 젊은 할아버지와 상범샘네, 그리고 달랑 저만 있었네요.
모진 겨울 피난살이를 도시의 자식들 곁으로 간 어르신들도 더러 있는 마을에
‘학교의 마을식구’들도 모두 본거지를 향해 집을 비웠고,
종훈네마저 서울나들이를 떠나고
아이들 열댓은 되게 시끄러운 하다마저 따라 나서고 나자
터엉 빈 대해리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