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 6.불날. 시원찮게 맑은

조회 수 1288 추천 수 0 2007.02.08 11:50:00

2007. 2. 6.불날. 시원찮게 맑은


부엌 아궁이 곁에
아이가 신는 겨울 슬리퍼가 물기를 잔뜩 머금고 세워져 있었습니다.
어데서 또 젖었겠구나 생각했지요.
“엄마, 나 신발 빨았다!”
“그래?”
“너무 더러워서...”
“뭐로?”
“저 솔로.”
때가 되니 다 합니다.
저녁마다 양말을 빨아 불 때는 솥단지 위에도 잘 펼쳐놓지요.

시카고에 있는 아이 아비랑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요,
단식을 하면 사흘째가 힘이 드는데 마침 그날인데다
사택 전화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몇 차례나 반문하는 그를 마뜩잖아했지요.
“아빠가 좀 그렇잖아.”
등을 돌리고 책상에서 뭘 하던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제게 귓속말 그리 했지요.
그런데 돌아서서 제(자기) 할 일을 하며 그리 중얼거립니다.
“나는 좋은 마누라 얻어야지.”
이눔의 자슥, 말하는 본새 좀 보소...
안 무서운 마누라를 얻겠다?

아이가 밖에서 불렀습니다.
“오늘 뭘 발견했는지 알아?”
쾌종시계라고 흔히 부르기도 하는 커다란 벽시계를 뜯어낸 밑부분인데
작은 책장으로든 장식장으로든 쓸 수 있겠더라고
한 번 볼테냐고 들고 왔습니다.
아주 그럴 듯했지요.
“그런데, 앞에 이 턱은 잘라야겠다.”
“제가 톱질 할 게요.”
지금은 다른 일로 바빠 나중에 한다고 밀쳐두고는
또 오데로 사라졌지요.
저녁답에 부엌에서 인기척이 들려 내다보니
그 물건에 걸레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 뗐네.”
“망치로 몇 번 두들기니 되데요.”
그리고 제(자기) 방에 들여놓습디다.

한 해 가장 한가로운 2월이나 되니
내 아이를 들여다보는 일도 잦습니다.
고맙지요.
풍요로운 그의 세계가 기쁨입니다.
어떤 부모가 그렇지 않을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426 2020. 4. 7.불날. 맑음 옥영경 2020-06-01 558
1425 2020. 1.11.흙날. 맑음 / 165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20-01-22 558
1424 10월 빈들모임 닫는 날, 2019.10.27.해날. 맑고 바람 많은 옥영경 2019-12-16 558
1423 2020. 3.25.물날. 맑음 / 현판 페인트칠 · 1 옥영경 2020-05-06 557
1422 2020. 3.19.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0-04-16 557
1421 2019.10.23.물날. 빗방울 셋 옥영경 2019-12-10 557
1420 2024. 3.25.달날. 비 / 그대에게 혹은 내게 옥영경 2024-04-10 556
1419 2024. 2.10.해날. 힘찬 해 / 설 옥영경 2024-02-13 556
1418 2023.11.13.달날. 맑음 옥영경 2023-11-25 556
1417 2023.11. 8.물날. 맑음 옥영경 2023-11-19 556
1416 2020. 3. 3.불날. 맑음 옥영경 2020-04-07 556
1415 2019.12.19.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0-01-16 556
1414 2019. 6. 9.해날. 구름 조금 옥영경 2019-08-05 556
1413 2024. 1.20.흙날. 비 / 발해1300호 26주기 추모제 옥영경 2024-01-30 555
1412 2023. 8.19.흙날. 구름 꼈다 맑음 / 2023 멧골책방·1 여는 날 옥영경 2023-08-21 555
1411 2020. 3.12.나무날. 맑음 / <상호부조론> 옥영경 2020-04-13 554
1410 2020. 1.29.물날. 흐린 사이 간간이 흩뿌리는 비 옥영경 2020-03-04 554
1409 10월 물꼬스테이 여는 날, 2019.10.19.흙날. 맑음 옥영경 2019-12-05 554
1408 2019. 9. 6.쇠날. 흐리다 비바람 옥영경 2019-10-16 554
1407 2023. 9. 7.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3-09-28 55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