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6.19.나무날. 비

조회 수 1264 추천 수 0 2008.07.06 17:13:00

2008. 6.19.나무날. 비


옥천으로 귀농을 한 이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아직 아이는 없는 부부로
유기농으로 논농사를 하겠다고 터를 구했다 합니다.
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볍씨를 뿌리는 일부터 하겠다지요.
“아직 산간은 해도 늦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데 이미 모내기를 하고들 있으니
볍씨 얻는 일이 그리 수월치는 않을 겁니다.
어쨌든 우리 말인데요,
글쎄 얼마 전 남아있던 마지막 벼들을 다 찧어버렸답니다.
한 번 실어나가는 일이 또 큰일이니
그냥 나누지 않고 나머지 가마니들 다 실어냈던 거지요.
주위에 알아보마고 전합니다.
귀농을 했다 떠나는 이들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니지만
끼리끼리 모여서 그런 겐지
농사를 짓겠다는 이들이 꾸준히 늡니다.
정말 이 지구 위에서
이제 길은 그것 밖에 없다고 하는 굳은 마음 아니어도
삶을 그냥 다른 흐름으로 살겠다고,
아님 생에 크게 기대할 게 없다고,
혹은 아이들은 자연 안에서 키우겠다고,
여러 까닭들로 시골로 시골로 오는 게지요.
어쨌든 살아가는 길이 어찌 한 길만 있을까요,
자기 식으로 ‘최선’을 찾고 그리 살아보는 것 아니겠는지요...

읍내에서 돌아오던 차 안이었습니다.
소리를 마구 질렀습니다.
아, 물론 운전 중이었지요, 혼자였구요.
힘겨운 학기 마지막 달이었습니다.
물꼬 안에 새로운 공사를 시작해서도,
논밭에 풀들 잡느라고 일이 많아서도,
무엇보다 바깥 공부 좀 하겠다고 나갔던 공간에서
마음 무거웠던 일 하나가 오래 마음을 옭았지요.
선생은 교실에서 서로의 좋은 관계에 기여해야 하거늘
오히려 관계를 파편화시키는(의도해서야 어디 그러겠는지요) 광경을 보며
그걸 보고 있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곳을 떠나는 이들과 떠나고 싶어 하는 이들,
저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쨌든 한 학기가 끝났습니다.
저녁 7시 8시, 한 과목씩 시험을 보고
돌아오는 차에서 그렇게 한참을 질러댔습니다.
이 시대의 우리 아이들도 시험마다 그럴지 모르겠데요.
그런 거지요, 그거 못 보면 또 어떻겠습니까만
하기로 했다면 그게 무엇이건 온 힘을 다하고 싶었던 겁니다.
열심히 살았지요.
동기가 선하다면 설혹 그 결과가 참혹하다 해도 뿌듯한 거지요.
그래서 지르는 소리입니다.
물꼬에 기여할 한 때의 새로운 집중이 필요했고,
그걸 했으며, 그만큼 얻었을 겝니다.
어디서나 그러하겠지만
역시 거기서도 사람을 통해 많이 배웠네요,
긍정을 통해서는 그것을 닮고자 함으로,
부정을 통해서는 나는 그렇지 아니 한가 반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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