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 3.쇠날. 맑음

조회 수 1183 추천 수 0 2008.10.19 12:18:00

2008.10. 3.쇠날. 맑음


뒤란에 물꼬미용실 열렸습니다.
줄줄이 머리들을 잘랐지요,
목수샘은 스포츠로, 소사아저씨는 단정한 중학생 머리로, 아이는 꼬랑지 머리로.
“꼬랑지 잘르래니까...”
아이의 머리에 목수샘은 가타부타 말이 많습니다.
“내비 둬요. 나름대로 멋있는데...”
엄마가 대꾸합니다.
“엄마, 자르자.”
아까까지 멀쩡이 앉아있던 아이가 의견을 바꿉니다.
목수샘이 잠시 비운 틈에 물었지요.
“왜 머리 자르자 그랬어? ”
“종대샘이 자꾸 뭐라 그러니까 박자 좀 맞춰 준거야.”
웃기지도 않는 아이들이랍니다.
목수샘과 아이는 자주 티격거리는데,
오죽 했으면 최근에는 자기 태권도 학원을 보내주면 어떻냐고까지 했지요.
“왜? 우리는 국선도 수련도 하잖아.”
“종대샘 무찌를려고.”
정말 웃긴 아이들이라지요.
목수샘이 공사를 오래 끌고 가면서
이래저래 곁에서 에미가 힘에 겨운 걸 보고는
(워낙에 목수샘이 혼자 하니 그렇기도 하지요.
정작 본인은 또 얼마나 애가 탈까요.)
어제는 같이 타고 오는 차 뒤에서 그러기도 했답니다.
“우리가 집 지을 때까지는 끽소리 말고,
엄마, 끝나면 혼내줘.”
아이랑 어른 하나가 벌이는 실랭이들이
때로는 결국 힘에 밀려 징징거리는 아이로 짜증이 일기도 하지만
나름 이 산골을 부산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이 모이면 모이는 대로의 재미가 또 있다지요.
자칫 몇 되지 않는 식구들이 큰 살림을 사느라 지치기 쉬울 때
유쾌한 두 사람으로 웃을 일이 만들어지고는 하네요.

저녁을 먹은 식구들이 모여 앉아 호두를 깝니다.
상품입니다.
양이야 얼마 되지 않지만
이 산골에서 거둔 것을 나누는 일은 즐겁습니다.
우리 사는 곳이 학교만은 아니어(저 건너 앞산 달골이며 들이며)
여간해서 모여앉아 이리 보내는 시간이 쉽지 않네요.
해가 지면 지는 대로 자기 일터들이 또 있지요.
“너 할 거야?”
“네.”
“그럼, 혼자 해. 너 할 거면 나는 안해?”
“같이 해요.”
“너나 해.”
“종대샘, 그러면 돼요? 공동체라는 게...”
맨날 티격대는 아이 하나 어른 하나가 또 시작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 이제는 살살 어른을 달래가며 같이 하자 합니다.
한참을 옆에서 웃었지요.
아이들이란 지 자리, 지 살도리를 다 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 안부 잘 묻지 않습니다.
정작 어른들이 늘 걱정이지요.

산골, 겨울을 나는 게 만만찮습니다.
월동준비는 큰 행사이지요.
상주하는 이야 몇 되지 않아도
오가는 이들이 많은 큰 살림이니 그것도 큰일이다마다요.
집만 무려 여섯 채입니다,
거기에 학교까지 있지요.
아래 학교에서 난로 셋에 쓸 연탄,
곶감집과 간장집에서 쓸 땔감,
달골에서 쓸 기름과 나무,
또 아이들 방에서 쓰는 난로와 고래방에서 쓰는 온풍기 기름,
그것들을 들이고 쟁이고 채우는 것이 난방준비랍니다.
그런데 언제 하려나 일정을 잡으려는데
마침 어제 오늘 몇 사람의 전화들이 있었습니다,
주말에 일 도와주러 올 수 있다고.
일이 되려고 그러나 부네 싶데요.
연탄집부터 연락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여기 살림까지 늘 살아주고 있답니다.
고맙다마다요.

안동을 넘어갑니다.
뭐 대단한 일을 하느라고
집안 어르신들 한 번 제대로 뵙지 못하고 산다지요.
젤 큰 어르신은 돌아가셨으나
형님네가 그곳에 사십니다.
이 가을에 건너가지 못하면 이 해는 한 번도 못 뵙고 간다 싶어
하루 저녁 잠시 얼굴을 뵙고 오자 건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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