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계자 사흗날, 2008.12.30.불날. 눈

조회 수 1460 추천 수 0 2009.01.07 12:46:00

128 계자 사흗날, 2008.12.30.불날. 눈


눈 내린 마당을 이른 아침 걷습니다.
눈 내린 아침의 너른 방도 마치 눈의 고요가 함께 한 듯합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아이들이 머무는 지금에 내려준 눈, 눈.
종소리에 맞춰 잠시 마음을 모은 뒤
곧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고 음악이 크게 들립니다.
그에 맞춰 체조를 했지요.
애들 깨울 때 샘들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알겠다며
새끼일꾼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더랬는데,
언 겨울아침 마당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지만
한바탕 그렇게 체조로 풀어서야 비로소 아침이 눈을 뜨는 이곳이랍니다.
그래서 ‘해건지기’라 일컫지요.
아침이랑 잘 맞는다고 샘들이 더 좋아라한 시간이 되네요.
여름은 보다 동적인 움직임으로
겨울은 이처럼 정적인 움직임으로 아침을 열기로 했답니다.
이번 계자는 퍽이나 ‘젊은 계자’(나이든 샘들이 드문 계자이네요)랍니다.
그런데도 분위기가 위로 솟지 않고
아주 오래 함께 이곳에서 영성의 시간을 가져왔던 이들처럼
평화가 우리와 같이 하고 있습니다.

산골로 배달된 커다란 선물꾸러미 하나가 있었습니다.
거기 수년을 만난 아이들의 어머니가 보낸
산골서 귀한 오징어, 다시멸치, 미역 같은 바닷것들이며
우리밀로 만든 국수와 유기농식재료들이 있었지요.
큰 아이는 이제 계자 시절을 지난 아이인데도
여전히 물꼬 형편을 살펴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얼굴을 봤던 적은 있었을까요,
언젠가 마주할 시간을 꽤 설레며 기다립니다.
늘 고맙습니다.
아이들과 잘 나누어먹겠습니다.

이번 계자 아이들은 참 밝다는 중평입니다.
전체 분위기가 밝더라도 몇 명씩 섞이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는데
이번에는 보통 때의 50여명 규모의 아이들 가운데
딱 밝은 아이들만 따로 모아놓은 것 같다지요.
미리모임을 하면 그 계자의 분위기가 짐작된다더니
알게 모르게 샘들의 분위기가 아이들에게 전이되기도 하였겠지요.
왔던 아이들이 스물 가까이나 됩니다.
왔던 샘들도 많습니다.
왔던 아이들이 또 오고 자라고
꿈을 키우고 새끼일꾼이 되고 품앗이가 되고,
그리하여 지금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샘들을 보면
무구한 세월을 느낍니다.
어제 아이들과 보낸 다사로움이,
그리고 엊저녁 불가에 둘러앉아 아이들 얘기를 나누던 정다움이
옛일처럼 자꾸만 겹쳐지는 하루였더이다.

손풀기를 한 번 더하겠다는 아이들,
그렇지 않아도 마침 오늘 속틀에 들어있었지요.
따땃한 아랫목과 잔잔한 음악이
이 겨울 아침, 그림보다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림을 그리려는 것은 그림을 잘 그리려는 것이 아니라...”
안내자가 했던 말을 저들이 따라 읊기도 합니다.
“다 보여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서로에게 그림이 아니라 그들이 바라본 사물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었지요.

들에 나갔습니다.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우렁이농법으로 키운 쌀이 그 논에서 나왔지요.
겨울 빈들을 아이들이 채웁니다.
불을 피우는 일은 즐겁습니다.
짚 위에 검불들을 놓고 마른 잔가지를 쌓고
그 위로 장작을 가로지르며 놓지요.
짚에 불을 댕기면 사이 사이로 자욱히 오르는 연기...
바깥에서 불을 피울 땐 들썩이면 외려 꺼지기 쉽습니다.
가만히 그 불가에 둘러앉았다 바方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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