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13.달날. 새벽 살짜기 다녀간 비

조회 수 1212 추천 수 0 2009.04.22 08:40:00

2009. 4.13.달날. 새벽 살짜기 다녀간 비


비어있던 산과 들도 아닌데
저리 채워오는 것들이라니요...
하루볕 무섭기가 오뉴월처럼
하룻밤 사이가 다른 봄산입니다.

논을 드디어 갑니다.
다른 논들 갈아엎어지고 물 채워지는 걸 멀거니 보다가
이웃 논 인술이아저씨네 거랑 느지막히 한 것입니다.
못판을 내지 않으니 조금 더뎌도 된다고 미룬 일이지요.
어찌 어찌 살아지듯
어찌 어찌 되어가는 논농사입니다.
간간이 집짓는 현장에서 들어온 목수샘이 큰 일을 하고
소사아저씨가 물꼬(이때는 정말 논에 물이 넘나드는 어귀)를 살피고
아이가 날마다 이른 아침 논두렁을 밟으며 벼를 지키고
오가며 머무는 이들이 손을 보탤 겝니다.
그리 가을이 올 테지요.

식구들이 묵은 김칫독도 정리합니다.
맛이 늦게 들어 먹는 게 늦어졌던 김장입니다.
그러니 남은 양이 솔솔찮지요.
해마다 일부러 여름까지 날 양을 더하여 담기도 합니다.
조금씩 나누어 냉동실을 채워두면
더운 날 얼음 낀 김치를 먹을 수도 있고
계자며에 김치를 주제로 보글보글방도 채우지요.
나오는 국물은 물과 섞어 액비를 만들어둡니다.
밭에 좋은 거름이 된답니다.

오늘 봄 산 봄 그늘을 오래 서성였습니다.
몇 해 자주 가고 있는 한 대학교정에 있었는데
거기 뒤란으로 연못이 있다는 것도 고시원이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지요.
하기야 한 학기 내내 강의를 나갔던 대구의 한 대학도
강의동 말고는 다른 곳을 들어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수년을 다녔던 대학만 해도 안 가본 구석이 한둘 아니었지요.
그러니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게 생을 살아나가나 봅니다.
살아도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삶처럼
보아도 보아도 날마다 새로운 것들을 만나니 말입니다.

저녁답에는 읍내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랑 들어섰는데,
가끔 가는 그 댁 주인장이 소리쳤지요.
“야아, 너 텔레비전에 나오더라! 금방 봤어.”
그야말로 따끈따끈한 소식이었지요.
나물도 캐서 무쳐먹고 계곡에도 가고
밭도 갈고 어데 가서 춤도 추더랍니다.
KBS 청주 ‘지금 충북은’(5:40~6:00) 얘기였지요.
물꼬를 아껴주시는 어르신 한 분의 전화도 있었습니다.
“따져야겄다. 내가 오늘 새벽같이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지지거리기만 하고 안나오잖아.”
새벽인 줄 아셨더랍니다.
에구...
텔레비전 정규방송 시간이 아침 6시부터란 것도
당신처럼 처음 알았네요.

읍내 나갔다가 버스를 타고 들어오는 아이가
버스 시간을 착각해서 차를 놓쳤더랍니다.
좇아가 정신 안 챙기고 산다고 아주 혼을 냈지요.
그런데 내겐 더 자주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내 일 많아 허둥거리니
그냥 잠시 운전해서 다녀오면 되는 그런 일조차 무게로 더해져왔던 게지요.
차 놓치면 다른 차를 타거나 데려오거나
어이 어이 방법들이 있기 마련인 걸...
그리하야 오늘은 그 무게들 잠시 내려두고
아이랑 잘 논 저녁이었습니다.
봄이 이리 좋은 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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