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7.나무날. 맑음

조회 수 1112 추천 수 0 2009.05.14 08:51:00

2009. 5. 7.나무날. 맑음


늘 있는 바깥 일정 하나가 마침 비게 되어
오랜만에 나무날 오전인데도 교무실에 앉았습니다.

영경언니 잘 지내세요? (생략)카오리입니다. 기억해 주시나...... 나는 계속 언니한테 놀러가려고
했었는데 못 갔어요. 아직도 거기 계세요? 난 아토피가 안 좋아져서 집만 있었어요. 올해는
좀 더 건강해줘서 언니 보러 가고 싶어요. 또 만날 때까지 서로 건강하고 올해도 행복하게 살아가요.
보고 싶은 언니에게 카오리가.

지난 1월 하순에 닿은 엽서에
아직 소식 전하지 못했음을 봄이 다 간 지금에야 알아차립니다.
곳곳에서 맺은 연들이 이렇게 닿는 산골이지요.
전화를 넣습니다.
아산에 있던 그들 부부는 음성으로 집을 옮겼고
거기 흙집에다 부엌을 내달았으며
유기농사 열심히 짓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서로 잘 살면 그게 힘이지요.

서울서 내려온 아이를 역에서 만났네요.
선천적으로 다리 뒤쪽의 힘줄이 짧다나요.
아직 어리니 운동을 통해 늘일 수 있을 거라 합니다.
선천적이란 말, 참...
특정 장애를 지니고 태어난 아이에 대한
부모들의 속이 어떠할까 새삼 마음 아립니다.
아이가 아팠던 저간의 사정을 아셨던 어르신 한 분은
아이가 돌아왔나, 뭐라더냐,
몇 차례나 전화 주셨지요.
고맙습니다.
그런 은덕으로 아이가 자라갑니다.

서울 다녀온 미선샘은 학교 큰 마당의 질경이들을 캡니다.
마당에 있는 것들 풀이라 뽑을 생각할 게 아니라
두고 캐먹고 효소 담고 이리저리 거둬먹자는 올해입니다.
학교를 지키는 장순이 있는 전나무 아래 일군 작은 밭에
소사아저씨는 박 종류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한 때 제도권 학교가 있었던 예전
암석과 지층을 알려주는 과학전시물들이 있었을 공간이랍니다.
독일에서 씨가 온 꽃호박도 심고
덩굴 올라가는 것들 거기 두루 심을라지요.
울타리도 잘 쳐두었습니다.
그것타고 오를 테지요.

골목길에서 마주친 트럭에 나물 가득 실린 걸 보았습니다.
“뭐래요?”
“가죽예요.”
늘 말 많이 듣던 가죽입니다.
우리 동네도 있으나 주인들이 있지요.
“팔아요?”
“아니라. 누구 줄라고 갖고 왔지.”
“어디서 땄어요?”
“우리 밭에 많아요.”
“어딘데요?”
황간이라데요.
꼭 뜯어보고 싶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담은 가죽고추장장아찌를 지난해 잘 얻어먹었지요.
뜯으러 가두 되냐 여쭙니다.
“낼 아니면 이제 쇠서 못 먹어.”
허니 낼 오라데요.
“오후에 전화 드리고 갈게요.”
마음이 가 있으면, 그리고 그걸 잊지 않으면,
언제고 하게 된다지요.

돌아오는 길, 아이랑 여러 선생들에 대한 이야기 나왔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그 분 참 좋은 것 같더라.”
“맞아. 혼을 내켜도 그 분은...”
“그래, 성품이 퍽 따뜻한 것 같더구나.”
“딱 엄마네!”
가까이 사는 아이의 찬사야말로 최고의 칭찬이지요.
잠자리에 들던 아이가 제 곁에 잠시 누워보랍니다.
“애기도 아니고...”
“1분만 옆에 누워줘.
사람들은 개성이 없다니까
나는 이게 개성이야.”
아직은 엄마를 끼고 돌지만
이러다 품을 떠나는 것도 금새일 테지요.

낼은 어버이날,
이런 날이 있어 고맙습니다.
그나마 한 해 한 차례라도 인사드릴 수 있네요.
물꼬를 지켜주시는 여러 어르신들께
전화도 넣고 작은 정성도 보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1946 2017. 9.19.불날. 맑음 옥영경 2017-10-21 933
1945 2017. 9.20.물날. 뿌연 하늘 옥영경 2017-10-21 824
1944 2017. 9.21.나무날. 맑음 / 밤마다 엄마를 지킨 어린 오빠 옥영경 2017-10-21 879
1943 2017. 9.22~23.쇠~흙날. 맑음 / 서울 강연, 그리고 사람들이 남긴 글 옥영경 2017-10-21 829
1942 2017. 9.24.해날. 맑음 옥영경 2017-10-31 886
1941 2017. 9.25~26.달~불날. 맑음 옥영경 2017-10-31 894
1940 2017. 9.27.물날. 비 옥영경 2017-11-02 893
1939 2017. 9.28~29.나무~쇠날. 맑음 옥영경 2017-11-02 787
1938 2017. 9.30~10. 4.흙~물날. 암벽등반, 그리고 칠선계곡에서 이른 천왕봉 옥영경 2017-11-03 1060
1937 2017.10. 5~8.나무~해날. 흐리다 비 내리다 긋고 다시 흐리고 갬 옥영경 2017-11-03 990
1936 10월 ‘물꼬 stay’ 갈무리글(2017.10. 6~8) 옥영경 2017-11-03 911
1935 2017.10. 9.달날. 맑음 / 블루베리 열여덟 그루 옥영경 2017-11-18 931
1934 2017.10.10.불날. 흐려가는 하오 하늘 / 카탈루냐 독립 요구 옥영경 2017-11-18 993
1933 2017.10.11.물날. 비 긋다 / 사드 반대 집회 옥영경 2017-11-18 870
1932 2017.10.12.나무날. 비 / 제도학교의 물꼬 나들이 옥영경 2017-11-18 919
1931 2017.10.13~15.쇠~해날. 맑다가 가끔 구름 옥영경 2017-12-10 734
1930 2017.10.16.달날. 맑음 옥영경 2017-12-11 754
1929 2017.10.17.불날. 맑음 / 집짓기 현장 첫발 옥영경 2017-12-11 867
1928 2017.10.18.물날. 흐리다 밤 살짝 발자국만 찍은 비 옥영경 2017-12-11 852
1927 2017.10.19.나무날. 스치는 인연처럼 저녁 비 잠깐 옥영경 2017-12-11 83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