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7. 1.물날. 다시 볕은 뜨겁다

조회 수 1014 추천 수 0 2009.07.10 17:34:00

2009. 7. 1.물날. 다시 볕은 뜨겁다


면소재지 마을을 지나는데
자리공이 열매 맺을 준비를 하고 있데요.
산 아래가 이러하니
두어 주 뒤엔 대해골짝도 그러할 것입니다.

양평에 새로 준비되고 있는 미술관에 들리기로 한 약속이 있었지요.
어제까지 멀쩡히 기억하고 있다가 밤새 그만 잊었습니다.
하여 다른 걸 하겠다고 계획 잔뜩 세웠는데...
이른 점심을 먹고 급히 역으로 달려 나갔지요.
단식을 7일 넘어서며 좀 더 했으면 싶었는데,
바로 이 서울행 약속 때문에 접었거늘...

가는 길에 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소식을 듣습니다.
러시아 오케스트라라면 꼭 달려가 듣지 못해도
실황중계를 챙겨듣고는 하였습니다.
어제 예술의 전당에서 실황녹음한 것이었지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흘러나왔습니다.
영화 <샤인>으로 널리 알려졌던 바로 그 곡입니다.
3악장 끝나면 흥분한 관객들이 박수를 칠 법도 한데
고요하게 다음 악장을 기다렸다나요.
4악장이 끝나고
조금만 더 기다렸다 쳤으면 싶은 박수가 꼭 때 이르게 나오고는 했는데,
언젠가의 공연에서도 딱 2초만 더 기다렸다 쳐주지 했던 그런 순간이 있었는데,
이번엔 흡족할 만치 모든 정적을 다 채운 다음 박수를 쳤던 듯합니다.
관객수준이 높아졌네 어쨌네들 하겠지요.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비창>을 끝낸 오케스트라의
앵콜 곡에 관심이 갔습니다.
보통은 안하는 게 상례라던가요.
그런데 했다합니다.
지휘자가 고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바이올린 첼로들이 주 선율을 번갈아가며 연주하고,
콘트라베이스가 받쳐주고,
이게 이토록이나 아름다운 곡이었던가요.
으악...
그래서 지휘자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지요.
미하일 플레트네프!
아, 거기 있고 싶었습니다.
대신 이곳에서 누리는 게 좀 많은가요,
하지만 이 곡이 흐르는 만큼은
산골을 벗어나 거기 가 있고 싶었습니다.
엊그제는 대전 예당에서 먼저 공연을 했다지요.
거기라면 크게 무리하지 않아도 갈 만했는데,
다음 공연에는 꼭 가리라 합니다.
미하일 플레트네프의 지휘에 꼭 가야지 합니다.

서울역에 어르신 한 분 나와 계셨지요.
물꼬의 큰 논두렁이시기도 하고
십여 년의 벗이기도 하답니다.
양평에서 미술관이며 준비하고 계신 몇 가지 현장을 둘러보고
갖가지 들꽃들이 번져간 너른 대저택의 정원을 밟고는
비발디파크 호텔형콘도에서 여장을 풀었더랬습니다.
가끔 부자 친구들이 가난한 산골살림을 살펴
밖에 나가면 편히 충분히 누리고 쉬도록 챙겨주지요.
이 만남들은 때로 진보와 보수의 격돌이기도 하고
그런 만큼 첨예한 정치적 갈등이 일기도 하는데
서로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 덕에
서로를 풍성하게 할 수 있지요.
제게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냉정하게 바라보는 눈을 준 것도 이 만남들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꼬의 이런 폭넓은 만남들이 고맙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나는 법이니까요.
우리들의 이번 자리는
자기 있는 곳에서 자기 일 잘 챙기는 것이 세상에 이롭다는,
다소는 냉소적인, 그러나 동양적인,
그리고 마치 나로부터 일어나 투쟁하리라던 80년대의 정황으로의 회귀인 듯도 한,
그런 성찰이 이 시대를 잘 건너가는 길 아닐까 하는 데에
오랜만의 합의가 있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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