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맞이 타종식

조회 수 1884 추천 수 0 2004.01.01 02:43:00

< 해맞이 타종식과 소원문 태우기 >

지금은 해가 막 바뀐, 2004년 정월 초하루.
산골에 살자니 날이 어이 되는지 달이 어이 가는지
별 대수로울 것도 없이 시간에 담겼다가
우수 경칩 지나며 봄이 되어야
비로소 한 해가 시작하려나 부다 하지요.
그렇더라도,
텔레비전도 없고 하루 세 차례 오가는 버스 아니라도,
바깥세상과 아주 교통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해 가고 해 오는 부산스러운 풍경이 아주 전해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갓 식구가 된 사람이 있기라도 하면
예수님오신 날이다, 새 해다,
도회에서 살던 시간 흐름을 아주 놓기는 어렵지요.
어찌되었든 세상의 부산스러운 해맞이가 아니라
지난 한 해 잘 살펴보는 정갈함으로
해맞이 타종식을 하자고들 하였지요.
보신각종은 멀어도 징으로따나.

주욱 늘어서서 징을 칩니다.
돌탑을 쌓아주겠다 괴산에서 오신 이상국샘을 빼면
공동체 식구들이 죄다 모였습니다.
우리의 어른이신 삼촌(학교아저씨),
시카고에서 공부하고 있으면서 잠시 다니러온 기락샘,
든든한 실무 희정샘과 상범샘,
뉴질랜드의 공동체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무지샘,
오래 머물겠다 왔다가 발이 묶인 열택샘,
신참들 정현샘과 동윤샘,
오늘은 나이트클럽 복장을 한 옥영경,
그만 잠이 들어버린 '하다'를 뺀 아이들 예님과 윤님.
(참, 구영이와 구슬이는 할아버지댁에 다니러갔네요)
대나무를 길게 이은 징채를 같이 잡았다가
도저히 소리통이 맘에 안든다며
다시 채를 짧게 쥐었지요.
지잉-.
징 소리 하나에 설움 하나 보내고
지잉-
징 소리 둘에 상처 하나 보내고
소리 셋에 미움도 보내고
소리 넷에 분노도 보내고...
소리 마다에 탁한 것들 다 떠나보내니
소리 마다의 울림이 다시 마음으로 되돌아와
맑은 모든 것들이 내가 되어갑니다.
어둠 짙은 운동장에 함께 그린 동그라미가
호수물결처럼 따스함으로 번져갑니다.
새해 덕담들을 나누었지요.
우리는 들떴으나 또한 가라앉았습니다.
준비한 소원문을 꺼내어 불을 놓습니다.
한지가 타서 하늘로 오르고
내 바램과 네 바램이 오르는 재를 따라 얽키고 설킵니다.
온 마음으로 온 마음으로 간절함을 딸려 보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래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애썼다고, 피붙이들처럼 살자고,
그만 눈물들이 글썽해집니다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밤새 놀이판을 벌이고 아침 해 건지기를 함께 하자고
본관으로 같이들 들어서는 걸음,
누구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에게로 전화를 합니다.
누구는 가장 그리운 이에게로 엽서를 씁니다.
이 단순하고 소박함이 주는 즐거움들을
멀리있는 그대들과도 나누고 싶습니다.
새해,
정녕 여러분의 삶에도 도타운 햇살 넘치소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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