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8.21.쇠날. 가을하늘

조회 수 989 추천 수 0 2009.09.05 22:33:00

2009. 8.21.쇠날. 가을하늘


송호리에 갔습니다.
방학 내내 계자에 묶여있던 아이는
너른 수영장에 가고 싶은 바램이 컸지요.
아이가 수영장에 들어가서 노는 동안
금강이 흐르는 옆 소나무 밭에서 노닐었습니다.
숨 쉬는 게 다 시가 되겠는 강가였지요.
소나무 그늘에 누워 책도 들여다보고
강물을 가만히 바라다도 보고
얼마 만에 찾아든 여유였는지요.
그런데 개미가 어찌나 많이도 기어오르던지,
지나는 아저씨한테 물었습니다.
“얘네들 어찌 좀 할 수 없을까요?”
“개미들이 거기 사는 거 당연하지요.”
아, 그렇지요,
그들의 집에 든 저야말로 객이었는데 말입니다.
해지도록 나올 줄 모르는 아이를 기다리는데,
내 삶의 흐름대로 살아주느라
저 아이도 참 고생이네 싶은 생각 듭디다.
하여 좀 더 기다렸다 불러냈더랬지요.

김치를 담았습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김치를 담는 건 살겠다는 의지다 싶습니다.
적어도 며칠을 더 살아내겠다는 뜻이지요.
제게 김치는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양이어도.
아주 가끔 친구나 후배 혹은 제자가
김치를 담아보겠다고 전화를 해올 때가 있습니다.
간이 젤 문제라지요.
그런데 그리 걱정할 것 없습니다.
남들도 그런가 모르겠으나 저는 아주 간단히 해결한답니다.
다음 날 간을 봐서 싱거울 땐 멸간장이나 조선간장을 넣거나
다시국물에 소금을 넣습니다.
짤 땐 국국물이나 다싯물을 부어주지요.
네, 오늘도 김치를 담았더랬답니다.

재미난 일이 있었습니다.
3,000원에 얽힌 계산법 차이였지요.
면소재지 술도가에는 지금도 술을 빚어 파는데
농사일 하는 식구들을 위해
자주 탁주를 받아옵니다.
반말에 9,000원을 하는데
통을 가져가지 않으면 3,000원을 더 내지요.
물론 통을 반납하면 다시 내주는 돈이랍니다.
그런데 오늘 통을 세 개 가져갔단 말이지요.
9,000원을 받아야하지요.
그런데 다시 반말을 사 왔지요.
“여기, 3,000원요.”
“아니, 6,000원을 줘야지.”
제가 가져간 통에서 하나에 다시 담아 보내니
당신이 받은 통은 두 개이므로 통 값은 두 개를 줘야 한다는 겁니다.
다행히 아들 내외가 나타나 계산법이 정리가 되었는데
그 할머니 편에서 보자면 이해를 아주 못할 것도 아닙니다.
논리로 논리를 깨기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걸 깨는 건 차라리 감정에 대한 호소이거나
심지어 완력이거나 3자의 개입이거나 다른 기제가 필요하지요.
논리는 결코 논리를 당할 수 없다는 생각,
또 새삼들데요.

오늘 아이는 시험이란 걸 처음으로 보러 갔습니다.
한 초등학교에 교류학생으로 가기 위해
그 학년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를 묻는 시험이었지요.
나름대로 수험생이었답니, 지난 한 주.
혼자 내내 과목들을 챙기고 있습디다.
바쁘더라구요.
자기 일이 되면 그리 움직이지요.
외려 고만 좀 하라 말릴 지경이었습니다.
주요과목 다섯 개를 보는 데 두어 시간 걸린다더니
한 시간 정도에 나왔데요.
자기가 생각하던 것보다 쉽게 나왔더랍니다.
시험을 못 봐서 가지 못하는 일이야 없겠데요.
“꼭 가야 하나?”
할 건 하지만 그래도 아니 갔으면 싶답니다.
지난 학기 두 군데에서 체험한 제도학교의 경험은
아이에게 학교를 굳이 가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똥도 못 누고’ 이른 아침부터 학교를 가서
죙일 공부하고 방과후 하고 학원 가고
집에 가서 또 숙제해야 하는 과정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은 시간을 아이들로부터 앗아간다 싶답니다.
그리 쏟아도 별반 혼자 공부하는 저보다
그리 우수한 것 같진 않았던 듯도 합니다.
“학교를 가는 까닭이 꼭 공부에만 있을까?”
이 시대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는 일반적 경험을
한 번 해보라 하였습니다.
“네.”
대답이야 그리하지만 영 마뜩찮은 표정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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