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 9.쇠날. 맑음

조회 수 1011 추천 수 0 2009.10.23 22:32:00

2009.10. 9.쇠날. 맑음


지난 빈들모임, 사람들이 애써서 땄던 담쟁이열매였는데,
때를 놓쳐 적당치가 않다고 밀쳐만 두었다가
오늘 그예 물에 다시 잘 헹궈
작은 항아리에 효소로 담았답니다.
제 때 잘 해내지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산골살이의 가을날을
이것저것 갈무리하며 보내고 있네요.

건너편 책상에 앉아있던 아이가 불쑥 그랬습니다.
"어서 자라서 엄마가 강연 가면 같이 가서 도와주고..."
“지금도 얼마나 도움이 크다구...”
그러게요, 강연이 있을라치면 자료 다 챙겨나가고
자잘하게 신경 쓸 집안일들 바라지 저가 다 하고
가방이며 짐도 그가 다 실어주고...
심지어 에미가 제도학교에 볼 일 보러 갈 적
산골에서 학교도 안 가는 아이가
도시락까지 싸서 에미 학교를 보내기까지 하는데...
먼 나라를 떠돌 때도
고작 네다섯 살도 안 된 녀석을 의지하며 다녔고,
생애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도 이 아이를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물론 남편이 큰 기둥이었음에야 말해 무엇할려구요.
그래도 가까이서 저를 챙긴 건 이 아이였답니다.
아이는 날 엄마로 만들었고,
심지어는 제 슬픔, 고단함, 외로움도 꾹꾹 눌러 삼키고
에미 뒤치다꺼리들을 해주고 있지요.

그 아이 달포 가까이 제도학교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그 마지막 날이었지요.
집에 돌아온 아이는 그간의 경험에서 생각한 바를
글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건너다보니 그런 문장이 보입디다.
혼자서 그동안 공부하는 게 재밌고 좋았는데,
즐거웠던 공부가 학교를 가니 즐겁지가 않더라,
행정적이고 제도적인 것이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같더라,
CD롬 한 장도 안 되는 지식을 가지고
학생들을 꽁꽁 매어두는 것도 이해가 안됐다,
똥도 못 누고 이른 아침부터 학교를 가서
문제집을 그대로 칠판에 쓴 것을 다시 공책에 옮겨 적고
하루 종일 수업하고 방과후공부 또 하고 집에 가서 숙제하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았다, ...
글은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인사도 하고, 포옹도 하고 했다. 사실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게 후회가 되기도 한다. 내가 너무 성급하고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친해진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들과 헤어지는 게 많이 서운했다. 그렇지만 학교야 다시 다니면 되고, 엄마 아빠가 선택하신 것이니까 큰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나는 예전같이 느긋하게 공부하지 않고, 검정고시 준비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리고 영동 도서관에 나가서 하던 서예, 문인화도 계속 열심히 할 것이고, 피아노 연습이나, 교과학습 같은 것 등을 꾸준히 할 것이다...’

오후에는 영동초등학교에 다녀왔습니다.
몇 해 되지 않은 6학년 교실의 책걸상을
바꾸게 되었답니다.
너무 멀쩡해서 필요한 이가 요긴하게 썼으면 싶은데
마침 물꼬 생각이 났다는 교장샘과 행정실의 전갈이 있었지요.
종대샘이랑 류옥하다랑 같이 가서 열여덟 쌍을 챙겨왔답니다.
가마솥방 것들을 바꾸어도 좋겠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공간에서 잘 쓸 수 있겠다 하고 말입니다.
교체하는 사물함도 60여 개 챙겨보겠다 하였으나
크기가 적당치 않아 아쉬워만 했더랍니다.
참 여러 그늘도 사는 물꼬랍니다.

한가위를 쇠러 서울 가셨던 행운님과 달골큰엄마
(하다는 이리 부르기로 명칭 정의했답니다)
오늘 대해리로 돌아오셨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2086 2009.10.20.불날. 맑으나 쌀쌀한 바람 옥영경 2009-11-07 868
2085 2009.10.19.달날. 심상찮은 날씨 /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 옥영경 2009-11-04 942
2084 2009.10.18.해날. 맑음 옥영경 2009-11-04 1011
2083 2009.10.17.흙날. 변덕 심한 하늘 / 산오름 옥영경 2009-11-04 1233
2082 2009.10.16.쇠날. 맑음 옥영경 2009-10-28 981
2081 2009.10.15.나무날. 흐림 옥영경 2009-10-28 964
2080 2009.10.14.물날. 갬 옥영경 2009-10-28 954
2079 2009.10.13.불날. 꾸물거리는가 싶더니 한 밤 번개동반 쏟아지는 비 옥영경 2009-10-28 1009
2078 2009.10.12.달날. 까물룩거리는 하늘 옥영경 2009-10-28 967
2077 2009.10.11.해날. 꾸물꾸물 옥영경 2009-10-23 876
2076 2009.10.10.흙날. 맑음 옥영경 2009-10-23 1000
» 2009.10. 9.쇠날. 맑음 옥영경 2009-10-23 1011
2074 2009.10. 8.나무날. 갬 옥영경 2009-10-23 923
2073 2009.10. 7.물날. 수상한 날씨, 가 오늘이었네 옥영경 2009-10-23 982
2072 2009.10. 6.불날. 맑음 옥영경 2009-10-20 905
2071 2009.10. 5.달날. 맑음 옥영경 2009-10-20 982
2070 2009.10. 4.해날. 맑음 옥영경 2009-10-20 873
2069 2009.10. 3.흙날. 보름달 옥영경 2009-10-20 890
2068 2009.10. 2.쇠날. 맑음 옥영경 2009-10-20 934
2067 2009.10. 1.나무날. 오후 흐려지는 하늘 옥영경 2009-10-12 1014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