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14.물날. 갬
가을입니다.
한 때는 영화로웠던 것들이 쇠한 뒤에 품을 수밖에 없는
절대적 쓸쓸함이 가을에선 묻어납니다.
고꾸라지듯 더위가 사그라들고,
가을이 익었다는 벗의 글월이 닿았습니다.
기온이 쑥 내려갔고
단풍 짙은 아침입니다.
길섶 산국을 땄고
길가 소국을 땄습니다.
안녕, 작은 국화들은 반기는 아이의 얼굴을 닮았습니다.
저것들이 없으면 겨울로 가는 이 가을 들이
얼마나 쓸쓸할 것인지요.
더러 구절초도 보였습니다.
꺾어온 국화꽃들을
아이들이 부엌 뒤란 평상에 놓고 꽃송이를 땄습니다.
“옥샘!”
미성이가 다가와 손을 펴들고
제 코앞에 대줍니다.
아, 국화향...
그 꽃들을 설탕에 버무리지요.
역시 효소항아리에 담으려 합니다.
저녁 밥상을 차린 뒤에도
국화향은 손에서, 아니 온 몸에서 났더랍니다.
김정희엄마는 지난 쇠날에 이어
오늘 다시 일산 병원에 가셨습니다.
계속 진료와 치료를 번갈아 해오고 계셨는데,
곁에서 바램만 큽니다.
건강을 돌보러 왔으니 그리 되면 얼마나 좋을지요.
류옥하다는 곁에 엄마가 없는 미성이를 데리고 다니며
나름 오빠 노릇을 제법 합니다.
고추장 집에서 같이 놀기도 하고
숙제를 봐주기도 하고 일기를 챙기기도 하였지요.
어른 몫 하나를 그리 해줍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하다가 고맙네."
"아니예요. 엄마가 저 키우느라 애쓰셨어요. 엄마가 잘 키워주셔서 그래요."
있는 밥에 먹는 반찬에 그냥 커버린 아이가
외려 제게 자주 고맙다 합니다...
간밤 40여 분 눈을 붙였습니다.
같이 공부하는 이들은 시험 준비를 하느라 지샌다는 밤인데,
에구, 밀린 일들이 그렇게 절 붙들었습니다.
이제 나이 들어 적게 잔 잠은
며칠을 몸에 피곤 딱지를 붙이게 될 테지요.
정말 나이 들어버렸습니다.
누군들 세월을 비껴갈까나요.
저녁엔 모든 일을 밀쳐놓고
달골 햇발동 거실 소파에 몸을 널었더랬습니다.
차를 달여 내고 음악을 틀고
그리고 건축과 예술이 만나는 책 하나를 들여다보았지요.
가끔 이런 쉼이 필요합니다.
산골을 다 채우는 가을빛이 고와도
가끔 이렇게 쉬어주는 영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달디 답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