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1.물날. 맑음

조회 수 926 추천 수 0 2009.11.07 09:19:00

2009.10.21.물날. 맑음


가마솥방에 난로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책방과 연구실에도 놓인 연탄난로이지요.
대해리 모질고 긴 겨울이 이미 시작된 겝니다.

학교 마당 건너 언덕엔 너른 밭 하나 있습니다.
경로당 회장일을 보는 신씨할아버지는
올해 거기 고구마를 심으셨지요.
당신네서 빌린 포도밭에서 포도를 처음으로 키우기도 웠더랬습니다.
선하고 선한 좋은 이웃 어르신들로
10년을 넘어 되게 보아왔습니다.
세월에 장사 없기 나이 들면 더하지요.
해를 더하고 또 더하며 부쩍 쇠약해지신 당신들인데,
여전히 꼼지락꼼지락 농사일을 하십니다.
그거라도 해서 자식들 살림 보탠다고,
놀면 뭐하겠냐고.
그런데 캐는 건 어이 어이 하셨는데
그걸 내리자니 여간한 일이 아닙니다.
쩔쩔매고 계신 걸 목수샘이 가서 거들어드렸지요.
고맙다 고구마 한 자루 돌아왔답니다.
이래저래 칠십 생도 더 되는 어르신들 키워내신 마을의 먹을거리들이
자주도 들어온답니다.
가끔 눈시울 붉어지지요.

우울이 며칠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처진 몸도 가세했겠지요.
달을 채웠습니다, 감기가.
나을만하면 쓰고 나을 만하면 써서
목은 밤마다 수건을 동여매고 자고있지요.
때가 때여서 어느 실내고 기침하기가 여간 곤역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슬며시 피하지요.
신종인플루엔자 감염 소식이 겨울로 가며 더 쏟아지는 까닭입니다.
이제 좀 가라앉아주려는지...
지난 5일 한밤에 산에 들어 목을 놓아야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사람살이 무슨 일인들 없을지요.
눈앞에서 사람을 물에 떠내려 보내기도 하고
가장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병상의 사투를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이 보내기도 하며
자식을 앞세우기도 하고
하루 아침에 입에 풀칠도 못하는 가난 앞에 서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큰 것만이 어디 일입디까.
사람을 갈작갈작 오래 갉아가는 아림도 있지요.
그걸 우리는 상처라고 이름할 겝니다.
다시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어느 한 순간과 맞닥뜨리게 되고
바로 그 순간은 더 이상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기도 하지요.
사람이 아무리 어려도 어느 한순간에 겪은 한 사건에 의해
그 사건을 겪기 전의 영혼의 상태를 영원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 했습니다.
더 이상 이제는 아이일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그런 강이 꼭 하나이기만 또 할까요.
한 동안 그 강 하나 건너느라고 퍽 우울했는데,
그래도 시간은 힘이 세서
또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모든 일은 ‘지나갑’니다!

밤,
아이랑 이불 위에 뒹굴며
참으로 오랜만에 같이 음악도 듣고 책도 보았습니다.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시간이 되더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2106 2009.11. 8.해날. 비 후두둑 옥영경 2009-11-18 965
2105 2009.11. 7.흙날. 흐려가는 하늘 옥영경 2009-11-18 936
2104 2009.11. 5.나무날. 흐린 하늘 옥영경 2009-11-18 988
2103 2009.11. 6.쇠날. 볕 좋은 가을날 / <우리학교> 옥영경 2009-11-18 1025
2102 2009.11. 3.불날. 흐림 옥영경 2009-11-18 991
2101 2009.11. 4.물날. 흐릿한 하늘 옥영경 2009-11-18 999
2100 2009.11. 2.달날. 갬, 기온 뚝 옥영경 2009-11-18 1051
2099 2009.11. 1.해날. 맑지 않은 옥영경 2009-11-18 1082
2098 2009.10.31.흙날. 흐려가는 오후 옥영경 2009-11-13 978
2097 2009.10.29.나무날. 흐리나 단풍색 밝은 옥영경 2009-11-13 1155
2096 2009.10.30.쇠날. 맑음 옥영경 2009-11-13 978
2095 2009.10.27.불날. 흐리게 시작터니 종일 옥영경 2009-11-13 1057
2094 2009.10.28.물날. 맑음 옥영경 2009-11-13 923
2093 2009.10.26.달날. 맑음 옥영경 2009-11-13 1024
2092 10월 몽당계자 갈무리글 옥영경 2009-11-07 1318
2091 10월 몽당계자 닫는 날, 2009.10.25.해날. 맑음 옥영경 2009-11-07 1097
2090 10월 몽당계자 이튿날, 2009.10.24.흙날. 맑음 옥영경 2009-11-07 1027
2089 10월 몽당계자 여는 날, 2009.10.23.쇠날. 맑음. 상강 옥영경 2009-11-07 1110
» 2009.10.21.물날. 맑음 옥영경 2009-11-07 926
2087 2009.10.22.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9-11-07 907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