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31.흙날. 흐려가는 오후

조회 수 978 추천 수 0 2009.11.13 21:32:00

2009.10.31.흙날. 흐려가는 오후


교실 한 칸을 황토방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계자가 있을 땐 여자방으로 쓰이는 곳이지요.
조금씩 조금씩 지난 한 주 동안 벽을 발랐고,
어제부터는 바닥을 바르고 있었습니다.
목수샘이 사부작사부작 하던 일을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식구들이 손을 보태
흙을 퍼다 날랐지요.
내일이면 목수샘도 집짓는 현장으로 간다하여
밤이 늦도록 일이 이어졌습니다.
일은 늘 그리 몰리게 되지요.
그간 그 많던 시간은 어디로 갔나,
우리는 늘 한꺼번에 쌓인 일 앞에서 그리 한탄합니다.
소사아저씨도 기락샘도 류옥하다도
모다 붙었더랍니다.

오후에 이곳의 세 연탄난로 가운데
마지막 난로가 책방에 놓였습니다.
가마솥방과 연구실에 이어서였지요.
겨울이 마을을 다 와서 기웃거리고 있는 게지요.

몇 해 동안이나 물꼬 아이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김천실내수영장의 림동진님과 김영명님 찾아오셨습니다.
감 있느냐셨지요.
감이 없다한들 오지 않으셨겠는지요.
어려운 시간을 건너던 두어 달 동안 내내 오고 싶었다셨습니다.
물꼬가 무엇을 해결해줄 수 있었겠는지요.
그도 그걸 기대했던 게 아닐 겝니다.
그냥 앉고 싶었던 거지요, 잠시.
우리는 때로 원형극장의 모모가 그립습니다.
물꼬가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문제만이 아닌 상담 전화도 있습니다.
“날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엿보고 따라 해요.”
오랜 시간 같은 회사에서 일하며 불편했던 동료에 대한
하소연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한 회사를 다니지 않는데,
웬만하면 피해가고 싶지만
비슷한 일을 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부딪히지 않을 수가 없다지요.
그런데 취미가 비슷하여 그런지, 아니면 서로 비슷한 사람이어 그런지
그가 하는 건 곧 불편한 그 동료 또한 하고 있답니다.
특정 악기를 다루면 그도 하고
그림을 그리면 그도 그리고
외국어회화를 하면 어느새 그가 하고 있고...
“왜 싫을까요? 추종자는 좋지 않은가요?”
그러나 그게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는 거지요.
그 사람이란 게 싫은 겁니다.
그 마음 아주 모를 일도 아니었습니다.
제 생애도 그런 비스무레한 관계 하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어쩌겠는지요, 그가 부처겠거니 해야지요.
불편함,
그건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하는 씨앗이라 하잖던가요.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는 계기이고
내게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나 자신과 주위 세상에 대한 관념들을 관찰하는 기회 아니던가요.
뭐 별 수 없이 나를 잘 보는 기회로 삼아야지요, 뭐.

늦게야 공동체식구들이 일을 털었습니다.
그 밤에 아이는
오늘 마감하는 무슨 공모전에 글도 챙겨 보냈지요.
산골에서 홀로 공부하는 아이는
그렇게 일을 찾고 움직입니다,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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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31.흙날. 바람 많은. <여자방 바닥 흙깔기>

오늘 아빠가 오고난 후, 저녁에 (한 7시쯤) 아빠가 “종대샘 흙바닥 까는 거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닌가?” 하셔서 여자방에 바닥을 흙으로 덮는 작업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냥 흙을 덮고, 그냥 펴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해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막 흙을 펼칠려니까 막 밀려서 바닥이 드러나고, 잘 덮으려니까 바닥이 너무 두껍게 됐다. 그래서 수세미 밀듯이 밀어주니까 잘됐다.
나는 제일 처음으로(종대샘 빼고) 기술을 잘 터득해서 아빠나 젊은할아버지보다 훨씬 잘하게 됐다. 종대샘이 “야~ 너 잘한다.”라고 해주실 정도였다. 종대샘한테 칭찬받은 게 1년 만인 것 같았다.
난 젊은 할아버지가 두껍게 하신 곳도 깎고 했다. 나는 바닥을 얇게 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 엄청 노력했었다.
중간에 엄마가 부르셔서 그만둬야 했는데 끝나고 보니까 옷 곳곳과 팔에 흙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떼기가 참 힘들었다.)
많이 힘들고,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지만 그래도 보람 있는 일을 한 것 같다.
힘들다.

(류옥하다 / 열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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