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 3.불날. 흐림

조회 수 989 추천 수 0 2009.11.18 22:11:00

2009.11. 3.불날. 흐림


무를 뽑았습니다.
어찌나 실하던지요.
종자가 좋아서도 그렇겠지만
예년보다 조금 서둘러 심었기도 했습니다.
계자에 와서 아이들이 누가 간 오줌도
잘 삭혀 듬뿍 거름으로 주었더랍니다.
무청을 잘라내고 부엌에 쌓으니
배부른 게지요, 보기만 해도.
뭘 해먹어도 맛날 것입니다.
아이는 어른들 서두르는 손발을 보태
된장찌개과 무채를 저녁에 무쳐냈답니다.

운동장 건너편 장순이랑 쫄랑이 사는 가장자리엔
아주 작은 밭뙈기 하나 있습니다.
작은 화단이었더란 말이지요.
거기 밭딸기를 옮겨 심어볼까 하고 패놓았다가
올 초에는 호박을 잘 걷어먹었고
내년엔 딸기를 키워내려 합니다.
오늘 퇴비를 담뿍 넣었지요.

젊은 친구들과 같이 듣는 강의가 하나 있습니다.
대학 4학년들이 대부분인데
그 가운데는 아이 키우는 엄마도 있고
똑똑한 편입생도 있고
직장 생활을 하다 온 어른스런 친구도 있고
나이 많아 대학을 간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간 자리에
어울려 먹던 과자봉지들이 고스란히(예쁘게도?) 놓여있었습니다.
이번만 본 것도 아니지요.
무어라 할 것도 아닙니다.
그건 또 제 모습 아니겠는지요.
어쩜 이 시대 겉만 멀쩡한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닌지...

늘 생각하면 안타까운 친구 하나 있습니다.
뒤늦게 편입을 해서 학교도 다니고
학비에 생활비에 헉헉거리겠다 싶은데
국가고시까지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시험이 다가올 무렵 그저 마음이 아려
제 앞가림도 쉽잖으면서 무슨 마음에
정히 어려우면 필요할 때 연락을 하라고까지 했더랍니다.
다행인지 연락은 오지 않았고
그는 어찌 어찌 살아가고 있었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학비에 생활비에 때마다 건강식에 용돈에
그에게 챙겨주는 이성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만 걱정하고 안타까워하고
어찌 할 줄 몰라 발 동동거리고...
그러고 보면 많은 문제들이 그렇지 않겠는지요.
세상은 어찌 어찌 돌아가고
사람들은 또 어찌 어찌 살아갑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 일입니다.
그저 자신의 삶을 먼저 잘 세우면
그게 서로 돕는 첫째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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