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 5.나무날. 흐린 하늘

조회 수 987 추천 수 0 2009.11.18 22:12:00

2009.11. 5.나무날. 흐린 하늘


날은 기온을 풀어 여느 가을날 같은 오늘입니다.
딸기 뿌리를 본관 건물 앞 꽃밭에서
마당 건너 손바닥만한 밭뙈기로 옮겨 심었습니다.
저장고에 들이고 남겨놓은 무들을 씻고
무도 썰기 시작했지요.
무말랭이가 더해지게 될 테지요.
모과를 또 따오기도 했습니다.
모과를 썰고 절이고 항아리에 넣고,
어제 버무려두었던 국화도 넣었답니다.

가을학기 통합교과 주제가 이제야 잡혔습니다.
제도학교를 다녀오느라 늦어진데다
두 달이나 훌쩍 지났으니 그냥 지나가려나 했지요.
그런데 오늘 그 주제가 잡혔는데,
아이 날적이를 들여다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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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 5.물날. 약간 쌀쌀함. <통일>

재미있게도 엄마와 나는 통일에 대한 생각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 환경(?)이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세대 간의 차이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확실 한 건 서로 주장이 완전히, 완전히 틀리다는 것이다.
내 주장: 내 주장은 바로 통일을 하지 말고 민주화를 거친 수 경제적 차이를 회복한 다음 느긋하게 통일하자는 것이다.
당장 통일을 하면 남북한 소득차이가 약 200배이기 때문에 서독 국민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 국민들이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느긋하게, 경제 수준을 맞추고 통일을 하자는 것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매기면 오히려 자금이 외국으로 빠지기 때문에 결국 이 엄청난 세금은 평범한 서민들 몫인 것이다. 이 통일비용은 수십 경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세금이 수천% 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누가 자식을 굶기면서 통일을 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1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몇 만원으로 올라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엄마주장: 엄마주장은 바로 통일을 하자는 것 같다. 경제보다 이산가족이 만나거나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완전히 굶어도 풍족한 남한사회(자본주의사회)에서 쓸데없이 나도는 돈들을 모아서 통일비용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나는 경제를 우선순위에 두고 통일을 해결하려고 하고 있고, 엄마는 이산가족 상봉 등을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류옥하다 / 열두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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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먹고 사는 건 중요해!”
맞지요, 먹고 사는 일은 중요합니다.
“당장 엄마한테 세금을 두 배로 내라 그러면 낼 수 있겠어?”
그런데 우리가 굶고 있나요? 통일하면 우리가 당장 굶어죽나요?
한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헤픈지
크게 느꼈던 3년여의 여러 나라 여행이 있었습니다.
선민주화 후통일, 좋습니다.
그런데 이만큼 살면서도
여전히 선경제 후통일이라 말하고 있는 것은 문제 있지 않나요?
그런데 정녕 안타까운 것은
통일에 대해 흔히 경제적인 접근만 한다는 것입니다.
통일비용을 내는 만큼 우리가 얻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까요?
그리하여 우리는 이번 학기에
통일을 향한 여러 주장을 살펴보기로 하고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보기로 하였답니다.


대전 시립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거기 예술의전당도 있고 수목원도 있지요.
산골 겨우살이를 앞두고 김장을 끝낸 뒤 묻어둔 독을 들여다볼 때,
수확을 끝내고 곳간에 쌓인 볏섬을 볼 때,
쌓아놓은 연탄과 장작더미를 볼 때,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에 문득 겸허해지고 그리고 배가 부릅니다.
차를 마시는 것과 향을 피우는 것과 몇 가지 명상수행과 먼길을 떠나는 것,
그리고 전시회관람, 그것들은 그 부른 배만큼 영혼을 불려주지요.
사는 일이 지난(持難)하고 가끔 안타깝다가
위로와 위안이 되고 살 만해지는 것이지요.
특별전이 있지 않아도 가끔 그렇게 가면
생이 제법 풍성한 밥상이 되는 것만 같습니다.

이응노 미술관부터 갔지요.
언젠가도 다녀와 글을 쓴 적 있습니다.
‘주역’전을 하고 있었지요.
그거 아니어도 소장품을 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자연광도 자연광이지만 별다른 문이 없이 하나의 열린 구조로 모든 방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 흐름이 곁에 흐르는 물과 바깥에서 건너오는 풍경으로
자연의 결을 더하는 그곳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그런데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지요.
빛이 좋았던 그곳은
그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 빛들을 좀 막아 답답해졌습니다.
뭐 고암의 작품이 그 답답함을 걷어줄 법도 하지만...
두어 달 전의 일이라던가요.
그를 생각하면 수덕사가 따라옵니다.
거기 대웅전 측면에 오랫동안 앉아있는 것도 좋아하지요.
그곳 700살 먹은 엄정한 건물 앞에서
시간이란 얼마나 힘이 센가를 늘 생각합니다.
그 들머리 수덕여관이 있고
현대 예술사에 큰 이름자 몇과 얽힌 인연이 있고
그리고 한글 자모들이 풀어져 춤을 추는 그 유명한,
고암이 남긴 문자추상이 거기 있지요.
물론 그곳도 변했습니다, 세상 여러 일이 그러하듯이.
수덕여관이 요란하게 두어 해 전에 새로 지어졌지요.
그가 얼마나 다양한 재료를 썼는가는
그가 그만큼 캔버스 앞에서 자유자재로 손을 놀렸겠다 짐작케 합니다.
문자추상과 군상으로 이름 지어지는 그의 작품답게
아이들의 낙서 같은 모양새를 한 것들이 우리 발을 붙드는 걸 보면
(피카소의 그림들이 그러했듯이)
그의 깊이가 어느 만큼인지 추측할 듯합니다.
그 단순함 속에 어쩌면 그토록 많은 이야기가 들었는지요.
하기야 어떤 작품이 그렇지 않겠냐만,
아, 그게 작품의 ‘깊이’일지도 모를 일일입니다.
특별전 공간에 섰습니다.
주역 64괘를 한 자 한 자 주로 군상으로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부단히 새로워지는 게 주역의 참 의미라 하는데,
그의 정신과, 그리고 그의 작품과도 궤를 같이 한다는 평에
군말 없이 동의되더이다.

시립미술관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전도 들어갑니다.
‘우주로의 여행’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우주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표현입니다.
달이 있고 별이 있고 해가 있고 무한한 공간을 가진 곳, 우주.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먼저 생각났고
이청준의 단편 ‘별을 보여드립니다’가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어린 날 보았던 황홀했던 하늘을
지금의 산골 삶에서 날마다 만나는 것도 행운입니다
(어쩌면 산골살이는 우주에 가깝다?).
스즈키 타로의 ‘바람의 형태2’실에 오래 있었습니다.
바람의 길을 보여주려 했던 걸까요?
바람은 사물을 흔들리게도 하지만
우리가 지나온 시간, 그리고 지금 내 옆을 지나는 현재를 보여주기도 한다 싶습니다.
끊임없이 무언가가 일어나고 그리고 모든 것은 지나지요.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사람은 삶을 견딜 만하게 되는 거구요.
들머리에서 처음 본 수잔 더저스의 ‘보름달-고사리’도 인상 깊었습니다.
작품 기법에도 호감이 갔고.
늑대의 울부짖음도 들음직하더라고 하면 너무 촌스러운가요?
유한의 존재인 사람이어 무한성 앞에서 더욱 경이로워하는 것 아니겠는지요.
그래서 유사 이래 인간은 끊임없이 그 미지의 세계에 도전을 했고
그예 달에 발을 디디고 인공위성을 쏘고 하지 않았겠는지요.
유한에 대한 발 동동거림이 무한을 더욱 갈망하게 했을 테고
그건 더욱 무한을 향유하고픈 욕망을 드러냈겠습니다.
자신의 기울어진 모습을 담고 있던 사타의 작품은
이 커다란 우주 안에서 우리 삶의 부유함(浮遊)을 보여준 건 아닐까도 싶습디다.
인간 삶의 뿌리라는 게 얼마나 허술한가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아이들을 만나고 사는 사람이니
어디라도 아이들이 기웃거린 곳이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마지막 칸에는 아이들이 표현한 우주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없었으면 세상 열두 번은 망했을 걸!”
언젠가 한 선배에게 그리 표현한 적 있었습니다.
“어디 열두 번만 망했겄냐?”
아이들이 있어 세상이(혹은 우주가) 망하지 않았다는 걸 그대는 아는지....

전혁림 전도 갔지요.
통영, 그곳은 별납니다.
한반도 남단 그 바닷가 마을에서
우리는 우리 예술사에서 아주 큰 이름자들을 줄줄이 엮어낼 수 있습니다.
윤이상이 그러하고 김춘수, 유치환이 그러랍니다. 그리고 전혁림 그가 있지요.
전혁림, 한국적 색채추상의 선구자로 불립니다.
그의 작품은 전통건축의 단청이기도 하고
명절날의 화투장이기도 하고
그리고 성황당에 모셔진 신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의 집약을 만다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우주 법계(法界)의 온갖 덕을 망라한 것이라는 뜻의 만다라는
부처가 증험(證驗)한 것을 그린 불화(佛畵).
그의 작품에도 같은 제목의 작품이 있습니다.
색의 온갖 것을 망라해 놓은 듯도 한 만다라는
바로 그의 그림의 전체적 인상을 대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작품들에서 바닷가 마을에서 만나는 당산집을 떠올렸고,
그가 통영 출신에 오래도록 통영에서 작업했다는 사실에 적이 놀랬더랬지요.
그는 그가 만나는 삶을 작품에 담았던 겁니다.
하기야 어느 작가인들 그렇지 않겠냐만
그는 그가 만나는 일상을 다 담아냈다는 의미에서
아주 견실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을 내놓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미술관 1층 세미나실에서는 ‘영화와 미술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영화라면 한 때,
그러니까 지금처럼 영화평론가들과 시나리오작가가 흔치 않았던 시절
선배의 글을 땜방하는 글을 여러 편 쓰면서 각별해진 장르이고,
산골에 살다보니 꼭 하나 아쉬운 게 원활하지 못한 영화 수급이었습니다.
잠시 좇아가서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미술적 요소가 어찌 작용하는가를 선 채로 듣다가
돌아가는 차편이 곧 떠난다는 전갈에 급히 나왔네요.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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