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15.해날. 햇살 귀한 엿새 끝에 첫눈
볕이 귀하게 군 한 주이더니
그예 간밤 자정을 넘기며 눈발 날렸습니다.
첫눈입니다.
잠 안자고 자정에 거리에 있었던 희중샘이
싸리눈 내린다 소식 먼저 전해주었지요
(희중샘은 선배네 핏자가게에서 일하는 중!).
읍내는 그리 눈발 날리다 말았는데,
풀풀 굵은 먼지처럼 날리던 눈이
대해리에 날 밝고도 꽤 계속되었네요.
달골에서 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꽤나 가파릅니다.
특히 달골 들머리 에돌아가는 첫 길이
가장 난제이지요.
달골 식구들이 이른 아침의 서울행을 잡아놓고 있었습니다.
혹 눈을 쓸고 햇살 퍼진 뒤 차를 움직여얄지도 모르지 싶었지요.
너도 나가고 나도 나가 길을 살폈습니다.
다행입니다.
날이 그리 얼어붙지는 않아
포장된 도로는 녹고 있었지요.
무사히 서울길 오르고,
어제 왔던 종대샘도 다시 집짓는 현장으로 돌아갔답니다.
눈이 다 얼음 될까 걱정이더니
두께 깊지 않아 녹기는 하였는데
날은 아주 매웠습니다, 바람도 셌지요.
학교며 달골이며 둘레를 돌며 단도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당 평상을 채워두었던 갈무리 것이 말썽이었습니다.
상주에서 가져와 썰었던 먼젓번의 무말랭이가 거기 있었지요.
물꼬에서 수확했던 것들은 다른 평상에서 무사한데 말입니다.
여러 사람이 얼마나 한참을 썰었던 것인데,
소사아저씨가 얼마나 여러 날을 덮고 펼쳤던 것인데,
이 댁 저 댁 그간 늘 고마웠던 분들께 맛나게 무쳐 보내려 했는데...
비가 들어 곰팡이 다 슬어있었지요.
꼭 그것뿐이 까닭은 아니었습니다.
본관에서 마당 건너 있는 백합나무는 크고 그만큼 그늘이 넓습니다.
그 아래 길게 놓인 두 개의 평상에는 여름날 그럴 수 없는 그늘이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건너갈 때 그 평상 위에 뭔가 말릴라치면
마당 한가운데로 평상을 끌어와야 하지요.
그런데 그게 꼭 사람 둘은 있어야 옮기는 거라
이래저래 미뤄지거나 잊어먹거나 하다
옮겨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무가 말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관리하던 소사아저씨도
아침 저녁 덮고 열면서 미처 보지 못하셨던가 봅니다.
어찌 그의 책임이기만 할까요.
다른 식구들도 무심했습니다.
가려보려고 하였지만 이내 포기하였습니다.
바람 거친, 해지는 산골 마당에서
날도 찬데 마음이 얼마나 싸하던지요.
제 때 손보지 못한 것들이 꼭 이렇습니다.
후회를 하고 애통해하고 뭐 그런 과정이
아무리 살아내도 있고 또 있습니다.
그 질긴 반복에 까마득해지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래도, 또 살아갈 겝니다.
우리 수확한 거라도 없었으면 얼마나 상심했을 것인지요.
김명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를
아이랑 다시 한 차례 보았습니다.
두 시간도 넘어 되는 것이라
사흘을 쪼개서 보아오고 있었더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