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24.불날. 맑음

조회 수 954 추천 수 0 2009.12.02 00:41:00

2009.11.24.불날. 맑음


젊은 친구 하나가 깊은 상처로 웅크리고 있습니다.
소식 없어도 그러려니 하고 말지만
몇 날을 자꾸 마음 기울기 전화 한 번 넣었더랬지요.
내막이야 다 알 길이 없으나
그가 얼마나 거친 길을 걷고 있는 중인지
몇 마디의 말로도 충분히 짐작됩디다.
힘든 일을 건너가는 가운데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입은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아파서, 그 짧은 순간의 몇 마디에도 아파서,
마음 둘 길 몰라, 목소릴 어찌 해얄지 몰라 흔들거렸습니다.
"그랬구나..."
"아고..."
"어휴..."
"어쩌면 좋니?"
할 수 있는 말들이 그뿐이었지요.
전화를 끊고 한참을 가만히 앉았습니다.
그 헤집어진 마음이 찢어진 조각으로 제 안으로도 날려들었지요.
그런 시간이 내게도 있었던 시절이 슬며시 가슴을 치고 올라
젊은 날 밤새 마신 술로 쓰린 속보다 더 쓸린 상처로
푸르게 살아납디다.
짧은 글 하나 보냈습니다.
"모욕적인 말들이 상처를 안겨줄 수도 있지.
하지만 네가 그렇게 되도록 허용할 때만 그래.
만일 바람이 너를 그냥 그쳐 지나가게 하는 법을 익히기만 한다면
너를 쓰러뜨릴 수도 있는 그 말들의 힘을 없애버릴 수 있어."
인디언 조셉 M. 마셜3세가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지혜를
그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마침 서가에서 발견했던 책이었더랬지요.
그런데 그 글월을 보내며 제가 더 큰 위로를 받고 있습디다,
제가 치유되고 있습디다.
이 글 앞에 눈을 멈춘 누군가도 그리될 수 있기를...

주말에 김장을 하려지요.
마침 읍내장날입니다.
김장을 위한 푸성귀들이 산더미, 더미였지요.
김장 준비만큼은 재래시장에서 보고 싶습니다.
좋은 젓갈을 공급해주며 김장에 조언을 나눠주시는 분도 거기 계시지요.
아이랑 다니며 두루 챙겼습니다.
장날마다 천연재료로 비누를 만들어 파는,
물꼬랑 한 때 이웃해서 살았던 이가
걸음을 재는 우릴 불러 세워
그 귀한 걸 또 선물로 나눠주기도 하셨네요.
곁에 살 적에도 떠나있는 지금도 늘 고마운 이름자인 그이입니다.
장을 빠져나오니 벌써 어둑한데
급히 대전으로 식구 하나 데리고 나가야할 일 있었네요.
산골짝 살아도 부산스럽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려.

아침을 달골 햇발동에서 해먹었습니다.
아래 학교와 따로 먹을 일이 있었는데,
간단하고 편합디다.
아주 드물게 아파트에서 이리 살아도 좋겠는 유혹이 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 살 수 있는데도 물꼬 일을 하잖아."
벗이 이곳 삶을 그리 격려해준 적이 있지요.
"단 한 명이라도
날(내 삶, 내 고생?)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힘이 나."
벗이 그리 이어 말했더랍니다.
그런가요?

손전화에 문제가 생겼더랬습니다.
아니 문제란 걸 이제야 안 것이지요.
액정에 생긴 문제로 지난 여름 바꾼 전화기이니
처음부터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을
응당 그런 기종이겠거니 하고 써왔던 것입니다.
아주 유용해서 기계적인 것에 전혀 익숙지 않은 이도 잘 쓸 수 있는 것을
이적지 모르고 있었더란 말이지요.
이왕 쓰는 물건이라면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것도
현명한 일 아니겠냐 싶데요.

악기를 다루시는 분의 연락을 가끔 받습니다.
물꼬의 논두렁이시지요.
이곳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했습니다.
위로 혹은 위안이라는 말씀이시겠지요.
그런데 아실지, 당신의 전화가 물꼬에 그런 기능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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