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 4.쇠날. 얼어붙은 마당

조회 수 946 추천 수 0 2009.12.20 17:54:00

2009.12. 4.쇠날. 얼어붙은 마당


날은 맑되 마당이 꽁꽁 얼었습니다.
볕이 잠시 찬 하늘에서 놓여났을 적
소사아저씨는 논에서 볏짚을 마늘밭으로 옮겼지요.
마늘 놓고 나면 덮어줄 것들입니다.
오후에는 배추뿌리를 씻었습니다.
효소재료인 게지요.

달골 햇발동 거실에 난로를 설치했습니다.
심야전기와 일반전기로 돌아가는 이 건물은
덩치가 워낙 크니 겨울날 난방비가 여간 부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상주 하는 이가 없이 아래 학교랑 왔다 갔다 할 땐
집안 기온이 낮더라도 그럭저럭 지낼 만하였으나
상주할 분들이 있고 보니 대안을 세워야했지요.
나무난로를 놓게 된 까닭입니다.
산 아래 이니
나무야 날마다 서너 차례 숲에 들었다 나왔다 할 참이지요.
헌데 요즘 건강이 허락되지 않고 있는 행운님이
추운 날씨에 홀로 난로를 놓고는 기진맥진하게 되었습니다.
공들인 만치 난로가 데워진 온기로 갚아주어야 할 터인데...

잠시 물꼬에 묵게 된 분이
그동안 살아오셨던 내력을 들려주셨습니다.
자태가 곱고 여유가 있는 분이라
귀하고 부유하게 사셨구나 싶었던 어른이었지요.
정말 아무것도 없이 월세 단칸방에서 시작한 살림에서부터
자식들을 이 나라 최고 명문대를 보내게 된 사연이었습니다.
그 자식들을 오래 봐왔는데,
그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아니었지요.
얼마나 따뜻하고 의리 있고 성실하고 부지런하던지요.
“집을 선뜻 내줘서...”
잠시 시골집이 필요했는데
물꼬가 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 게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형편에 과할만치 교육에 대한 투자는...”
지금도 사정을 보면 이제 다 큰 대학생 자식들한테
아르바이트라도 하게 해야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그 시간에 오히려 ‘네 몸 값을 더 올려라’신다지요.
당신의 가치관 안에서
나름 세상을 훌륭하게 사는 지혜이실 것입니다.

아이랑 영동권의 몇 곳을 돌아보는 답사가 있었습니다,
면소재지 나가는 길에 있는 하도대의 화수루부터.
마을 들머리, 여느 마을처럼 느티나무 한 그루 있었고,
다른 산마을들이 그러하듯 오래 비어있었던 듯한 무너진 집이 있었습니다.
흙집과 돌담이 눈길을 끌었지요.
요새 관심이 많은 영역입니다.
길을 떠난다는 것, 어떤 곳을 찾는다는 것, 결국 그것은 ‘만남’이겠습니다.
목적한 곳과의 만남, 그곳의 사람과의 만남, 그곳을 둘러친 자연과의 만남.
허물어진 집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돌담을 쓰다듬고 감나무를 올려다보고...
그곳에 닿는 햇살로 마음도 한껏 밝아져
촐랑대는 강아지들마냥 그 만남에 신이 났더랍니다.

임산의 영모재도 들렀지요.
그런데 아궁이는 있으나 굴뚝이 없었습니다.
불을 지피면 연기가 내부로 빨려 들어가게 하였다는데
1938년 일본의 한 건축학교수가 이를 알아보려고 뜯어보니
온돌이 2중 구조로 되어있고 온돌 밑 사방에 물이 담겨진 옹기가 묻혀있더라나요.
물이 연기를 잡아들이는 특성 때문에 그런 구조이지 않을까 짐작했다지요.
재실의 비스듬한 뒤란이 유달리 아름다웠습니다.
담 너머로 푸르른 대나무들이 호흡을 가다듬게 하였지요.

양강면 괴목리 김선조 가옥.
안채의 양 날개 지붕이 맞배와 팔작으로
양쪽이 특이하게도 다른 양식을 하고 있데요.
안사랑채가 있는 것도 처음 보았습니다.
뒤란에서 이어지는 팽나무숲이 퍽이나 인상적이었지요.
학산면 봉림리 성위제 가옥.
고즈넉한 마을이었습니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요?
이곳도 여느 마을과 다르지 않을 테지요.
농한기에 도시로 간 자식들네를 다니러 갔을 수도 있겠고,
경로당에 모여 있을 수도 있겠고,
어느 집 안방에서 도란거리고도 있을 겝니다.
광채가 정말 볼만했지요.
목조 초가지붕으로 오른쪽의 한 칸은 외부로 개방하여 헛간으로 쓰고 있었고
나머지 3칸은 판자벽을 두르고 마루를 깔아서 광으로 쓰고 있었는데,
널따란 판자를 큼지막하게 세로로 끼우는 가구법이
아주 오래된 기법이라 하였습니다.
외암리 민속마을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어서 좋았던.
기념이 되고 옛것을 추억하는 걸 넘어 현재에서 그곳이 삶터인 곳이 좋습니다.
다른 나라를 다니면서도 현재적 의미를 지닌 곳들이 좋데요.
핀란드 세우라사리의 옛마을이 어디보다 좋았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봉림리 미촌마을을 나오다 다시 차를 되돌아 세웠습니다.
마을 앞엔 늘 느티나무 한 그루 있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이 마을은 250년 된 왕버들나무가 그를 대신하고 있데요.
그것만으로도 내려서서 경의를 표하기 충분한데,
이 나무에는 다른 나무들이 깃들어 사는 걸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산벚나무 쥐똥나무 까마귀밥여름나무 이스라지 몰괴불나무 산뽕나무 팽나무
산사나무 겨우살이 환삼덩굴 쑥이 그들입니다.

지역도서관에서 달마다 한 차례씩 있었던 마지막 특강도
아이랑 다녀온 오후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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