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2-13.흙-해날. 쾌청하진 않았던

조회 수 929 추천 수 0 2009.12.28 08:06:00

2009.12.12-13.흙-해날. 쾌청하진 않았던


이틀 대해리를 비우고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식구들은 그 사이 청소며
쌓인 비닐들이며 쓰레기장을 죄 정리했지요.
공간이 넓으니 칸마다 쓰레기통도 많고
밖에서 들어오는 물건이 없다싶으면서도
희안하게 쓰레기통은 찹니다.
사람 사는 일이 참 그래요,
쌓이는 껍데기들을 벗겨내며 살아가는가 봅니다,
양파껍질처럼 그리 까고 나면
더 이상 나오지 나올 때 비로소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쇠날 구미로 건너가 이틀 밤을 묵으며
이른 새벽 대구까지 출퇴근을 하였더랬습니다.
여느 연수들처럼 그 목적에 아주 충실했던 연수였고
그러자고 모인 자리이니 의미 또한 그 크기만큼 되었지요.
함께 한 젊은 친구들 예지 미현 선영 판건 민우와 운동경기도 하고
좋은 동료로 많은 얘기를 나눈 것도 성과였겠습니다.
그들은 물꼬 겨울에 힘을 보태기로도 하였지요.
아이랑 이틀 즐거운 한 때를 같이 보낸 것도
고마운 일이지요.
제도학교를 가지 않고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너른 공간에서 각자 맡은 일을 하느라 하루를 보내고 있으면
밥 때나 겨우 얼굴 보는 때가 흔하니까요.
늦은 밤 민규 재욱 현우 중고생들과
남겨놓은 모든 설거지를 하고 말차와 보이차를 마시던 일도
퍽이나 인상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자식을 저리 반듯하게 키워낸 부모가 존경스러웠지요.

그런데 더한 ‘연수’는 외려 뜻밖의 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제 삶을 대단히 크게 흔들어준 사건이 있었지요.
하나.
볼링을 치고 묵는 곳으로 돌아오니
상이 부엌 쪽으로 위치이동만 했을 뿐
다 나갈 때 그대로 있었습니다.
김치통은 자르던 가위가 걸쳐진 채 뚜껑이 열려있고
전을 부치던 뒤집개도 프라이팬에 놓인 채 그대로 있고
상 위 빈그릇들 역시 그대로 있고...
“어떻게 그러구 잠이 와?”
“일의 우선순위를 하는 거지. 그대로 놔두고 잔다 그랬잖아.
그리고 자기가 안하면 00아빠(남편)가 했을 거야.”
그래요, 할 만한 누군가가 합니다.
그런데 나란 사람, 그런 상황에서도 죽으라 치워댑니다.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이 들어도
그예 다 치워내고 눕습니다.
예의라든가 그런 비스무레한 것에 엄청 눌려 사는 거지요.
누가 보았더라도 그가 바쁜 걸 이해했지
그렇게 두었다 비난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둘.
첫날에도 여럿이었지만
이튿날은 더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서 그 댁에 있었지요.
그런데 밥상에 두 종류의 김치에 밑반찬 둘, 통배추과 된장,
그리고 있는 찌개에 밥 먹었습니다.
그것도 너무나 맛나게 먹었습니다.
(후딱후딱 일 잘하는 그이니
곧 곡주 한 잔 하는 자리엔 튀김과 부침을 해서 냈는데
이건 밥상이야기입니다.)
온 사람들을 만만하고 함부로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그는 누구에게라도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다를 합니다.
저란 사람, 손님이 온다 그러면
냉장고에서 찾아내 할 수 있는 걸 죄 하려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할 테지요.
그런데, 따순 밥과 찌개 하나 김치 하나로도
사람들이 충분히 맛나게 먹는다는 사실!
그것도 고맙게!
아, 물론 그 반찬들이 맛이 있어야지요.

셋.
샘 댁을 들어서자 찻잔이며 거실에 먼지 그득그득하고
식탁이며 둘레엔 이것저것들이 마구 널려 있었습니다.
“바빴거든.”
생전 청소를 아니 하는 이도 아니고
그가 지저분한 이도 아닙니다.
그러게요, 바빴으니 못했잖아요.
가끔 저, 무리하게 청소를 합니다, 사람맞이에.
그렇다고 대단히 깨끗하게 사냐하면 그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해도 해도 윤이 나지 않는 낡은 살림,
그러나 아니 하면 금새 표나는 허름한 살림 어쩌구 하면서)

넷.
이튿날 사람들은 연수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떠나고
우리는 구미로 돌아와 다시 그 댁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객이 배추전 좋아한다고
샘은 윗도리 겉옷만 벗은 채 서둘러 부침개를 했지요.
저 먼저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지요.
“제가 할게요. 옷 갈아입고 오셔요, 냄새 배잖아.”
“옷이야 빨면 되지!”
그래요, 옷이야 빨면 되지.
저는 대부분의 날을 그 상황에 맞게 몇 차례 옷을 입고 벗고 합니다.
뭐, 빨면 되는데, 그러게요.

다섯.
“사부님이 더 대단하다.”
이튿날 저녁은 사부님이 김치찌개에 밥을 눌러두셨더랬지요.
“내가 명절이고 어느 때고
60명이고 얼마고 당신네 식구 다 뒤치닥거리하는데,
어쩌다 내가 바쁠 때 그러는 걸 갖고, 뭘...
다 내가 그만큼 하니까 그런 거야.”
그래요, 그냥 찌개에 밥 달랑 하면 되는 일,
무에 그리 어려울라구요.
그런데, 남편이 잘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아예 시켜보지 않아왔더랬습니다.
맡기면 다 해내지요, 웬만하면.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일찍이 그렇고 싶었던 것을
비로소 구실을 얻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삶의 무게가 화악 가벼워진 게지요.
뭐라도 가볍게 편하게 할 수 있겠는 겁니다.
차린 상에 달랑 꺼낸 것만 얹은들 어떤가요,
외출복에 음식을 하면 어떤가요,
먼지가 좀 쌓이면 어떠냔 말입니다.

배짱 좋은 미순샘 댁에서 저녁을 먹자마자 쫓겨(?)났습니다,
설거지도 못하고.
“빨리 가는 게 도와주는 거다.”
대해리로 돌아오는 차에 통배추와 귤을 실어주셨지요.
잘 먹고 잘 자고 연수 잘 받고 돌아왔습니다.

아이도 같이 받은 연수,
어데 가서 아이가 의젓하니 좋데요.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는지요.
마지막 인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를 입에 올려주었습니다.
모다 고맙습니다.
사람들이 따뜻해서 허물 많은 아이를 안아주었던 것 아닐지요.
우리가 아껴야 하는 게 뭐냐 물었을 적,
시간, 돈, 기름, 갖가지도 대답할 때 아이가 말했더랬습니다.
“사람!”
아이들을 통해
우리는 잊었던, 혹은 생각 못했던 것들을 만나고는 하지요.
마지막,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그 아이가 그랬습니다.
자신의 자존감(존재감이라던가?)을 높였다던가요.
그저 들은 말로 옮기는 낱말이 아니었지요.
돌아오는 차에서 아이는 그것을 잘 설명해주었더랍니다.
어쩌다 덩달아 가서 같이 받게 된 연수인데
그 아이가 더 많은 걸 얻었던 듯하더이다.

아, 바느질!
강사님 한 분이 양복단추가 떨어졌습니다.
바늘쌈지를 찾았지요.
한 사람이 손 번쩍 들었습니다, 저요.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작은 물건이 잘 쓰이고 있으면
얼마나 좋던가요.
일 년 열두 달 거의 쓸 일 없는 가방 구석의 것이
그리 빛 한번 봐서 좋았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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