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21.달날. 맑음

조회 수 982 추천 수 0 2009.12.30 11:36:00

2009.12.21.달날. 맑음


마늘밭 둘레에 있던 나무들을 좀 베어냈습니다.
큰 것은 가지를 쳐내고 어린 것은 통째 잘랐지요.
그것에서 날아든 낙엽들이 배추 사이사이 앉아
잘 털고 씻어냈으나 아주 가끔 김치에서
작은 낙엽 하나 만나고는 하였더랍니다.
초벌땔감으로도 잘 쓰일 테지요.

한전에서 다녀갔습니다.
눈길을 헤치고 달골에 올랐지요.
갑자기 배가 넘는 전기료가 나와
혹 누전은 아닌가 알아보기로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지요.
“여기가 아닌데요.”
당연히 달골인 줄 알았습니다.
아래 학교더라구요.
살림을 모르고 살았던 터라
살림을 살던 이들의 기록에 의존하게 되는데,
혹은 알려주었더래도 남의 일이었던 듯 잘 몰랐다가
이제야 이곳저곳 살펴야하니
알고 있었던 정보들이 전혀 엉뚱하기가 한두 건이 아니지요.
지난 달, 아래 흙벽해우소 벽을 지나던 수도관이 터져
온수기를 끈 일이 있었습니다.
온수가 며칠 새나가서도 그러할 테고
그 큰 온수기를 데워내려니도 그러했을 것이라 짐작했지요.
덕분에 이곳저곳 전기상황을 알게 되었더랍니다.
안다는 건 잘 꾸릴 수 있는 토대이다마다요.

홈페이지에 새끼일꾼계자 교통편에 대해
한 어머니가 문의를 한 글이 있었습니다.
도착 기차와 떠날 버스의 간극에서
역에 너무 오래 서성일 아이에 대한 걱정이었지요.
그런데 교무실에서 대답하기 전
새끼일꾼 아람과 태우가 답을 달아주었더랬습니다,
역에서 어떤 흐름이 이어질지 아주 세세하게.
감동입디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물꼬 인력에
교무실은 더욱 그러합니다.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메일에 답 또한 더디지요.
미처 다 챙기지 못하고 날들이 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밖에서 여러 사람들이 지원을 한다지요.
고맙습니다.

어느 책의 교실 구조화를 위한 기본적인 규칙을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교실을
부서지고 망가져서 사용할 수 없는 자료들이 쌓여있는 장소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요긴할 것이다, 필요할 때 새로 사지 않고 쓸 수 있어야 한다,
혹은 게을러서, 아까워서, 때로는 사람들이 마음 써서 준 거라서,
이런 저런 까닭으로 쌓인 물건들이 교무실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오늘 그예 몇 해째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전자제품들을 치워냈지요.
교무실이 발랄해졌습니다,
여전히 정리할 것이 많고, 낡고, 어수선하나.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온 학교를 치워내려던 일에
조금 더 서두를 계기가 되었네요.

물꼬 일을 시작한 스물두 살 이후에
곁에는 훌륭한 동료후배들이 있어 왔습니다.
제가 혹여 잘한 게 있다면 다 그들 덕입니다, 모다.
이십여 년 가까이 그리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난 두 해 처음으로 곁이 없었지요,
오며 가며 돕는 손발이야 있었지만 상주하여 바로 옆에.
때로 황망하고 서러웠습니다, 이제야 할 수 있는 말입니다만.
특히 십여 년을 같이 걸었던, 오랜 벗이기도 했던 한 친구를 보내고
툭 혼자 남겨졌는데,
은행 일에서부터 교무실 자잘한 일, 이곳저곳 학교 구석구석 돌아가는 일,
무엇 하나 그 친구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남편을 갑작스레 보내고 보험설계에 뛰어들어
여왕에 등극했던 이들의 후일담에 나오는 얘기처럼 말입니다.
지난 두 해, 얼마나 자주 어쩔 줄 몰라했던지요.
그런데 비로소 올 겨울 계자 앞에 이르러서야
난자리가 난자리가 아닌 듯 여겨졌습니다.
그들이 해준 바탕이 있어 아무것도 모르던 이가
두 해를 어찌 어찌 살아낼 수 있었던 게지요.
다시 고맙습니다.

물꼬에서 연을 맺어 혼례를 올린 이들이 몇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괴산에서 물꼬랑 닮은 학교를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물꼬가 서울에서 했던 어린이연극교실을
그곳에서 이어가고(?) 있고
계절학교 역시 하고 있지요.
재작년 여름 신청마감된 물꼬 계자에 아이를 보낼 수 없게 된 분이
비슷한 곳을 찾다가 알게 됐다며 그곳의 통신문을 보내온 뒤로
간간이 소상한 소식을 알게 되었더랬습니다.
‘마친보람’ ‘때빼고광내고’ ‘선녀와 나무꾼’ ‘종합선물세트’...
물꼬 속틀에 쓰는 일정이름들을 공유하여 쓰고도 있었지요.
또 다른 하나는
영동 안에서 막 체험학습과 캠프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습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던가요.
열심히 했고 잘했던 이들이라 잘하고 있고,
그리고 잘 할 것입니다.
청출어람이라 하지 않던가요.
나쁜 짓이면 하겠는지요, (물꼬부류의 일이)좋으니 하는 걸 겁니다.
그래서 물꼬가 더욱 가치롭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서로를 잘 살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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