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계자 닫는 날, 2010. 1. 8.쇠날. 맑음

조회 수 1015 추천 수 0 2010.01.13 19:19:00

135 계자 닫는 날, 2010. 1. 8.쇠날. 맑음


아이들 나간다고 날은 또 말개졌습니다.
하늘 고마운 줄 아는 산골 삶,
늘 하는 말이지요.

이번 일정은 어른들이 적은 것도 아니었는데
발이 바쁘고 계속 일정이 밀리기도 하고
좀 꺼끌거린 시간도 없잖았습니다.
여러 차례 계자를 경험한 이들이면
더러 다른 계자와 견주고는 하지요.
언제는 그랬는데, 그땐 아니 그랬는데,
좀 힘이 들기라도 하면 지나간 시절이 자꾸 끌려나옵니다.
헌데, 그럴 것 아닙니다.
그 계자를 중심에 놓고 온전히 보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계자 아닌지요.
혹 좀 모자랐더라,
그런 날도 이런 날도 있는 게지요, 사는 일이.

1년 7, 2년 2, 3년 6, 4년 4, 5년 8, 6년 6, 중1 7명으로
고학년의 비율이 아주 높았던 계자였습니다.
더구나 고학년 두 덩어리가 각각 한 지역에서 몰려와서
서로 더 깊은 우정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도 했지만
이곳을 잘 누리는 데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있었댔지요.
다행히도 먼 길을 같이 걷고 돌아와서 녹아들 수 있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또한 늘 계자의 마지막 일정에
길을 떠나는지도 모르겠네요.
큰 아이들이 많으니
작은 아이들한테 맘이 또 많이 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 눈에서 놓쳐지지는 않을까 하여.
나현이가 젤 맘이 걸렸네요.
또래 여자가 없어 심심할 때도 있었을 겝니다,
다행히 형님들과 샘들이 잘 챙겨주긴 하였으나.
마지막 밤 불가에서는 어쩜 그리 한결같은 말이 나오는지...
5박 6일이 하루 같애요,
이제 친해졌는데 내일이면 가요...
눈이 왔고 눈을 치웠고,
눈 위에서 썰매를 타고 눈길을 걷고,
음악놀이 미술놀이 연극놀이를 하고,
요리를 하고, 방에서 구들을 지고 뒹굴기도 하고,
아침 저녁 명상하고 대동놀이하고,
훌쩍 그렇게 가버린 엿새였습니다.

장애가 심한, 아이들보다 한 시간 먼저 간 아이가 있었습니다.
따라 나간 샘들도 아이들도 눈물바람이 되었지요,
그 예쁜 아이가 받을 상처 때문에
그 예쁜 아이 앞에 놓친 앞으로의 생 때문에
그를 둘러싼 아이들의 고운 마음 때문에
대문을 나서는 그에게
세상이 이곳처럼 그러하지 않다는 걸 우리가 알기에.
그가 이곳에서 평온했고
그를 통해 모두가 마음결을 골랐습니다.
장애란 가난처럼 불편함 이상입니다.
그래서 멀리서 볼 때 너그러울 수 있어도
내 일이 되면 내 곁이 되면 그걸 받아들이는 일이 만만치가 않답니다.
그런데도 자기 불편함을 기꺼이 놓아주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마다요.

“선생님은 아이들한테 화를 안 내세요.”
화를 감추기 때문이 아닙니다.
화가 안 나는 것이지요.
그러니 화를 안 내는 게 아닙니다.
화를 낼 일이 없는 겁니다.
적어도 아이들 때문에 화가 날 일은 없습니다.
그게 물꼬다 싶습니다(뭐 어른들한테야 그렇지 못합니다만...)
한편 이곳에서의 선생이란
점잖게 칠판 앞에만 있는 이가 아니지요.
장애아 똥기저귀를 갈고
밥을 하고 상을 차리고
걸레를 빨고 해우소를 치우고
연탄도 갈고 아궁이에 불도 때야 합니다.
민우샘과 희중샘은 누구보다 감동을 일으켰더랍니다.

모진 날씨, 거친 생활의 불편함을 채워주는 건 어른들의 손발이지요.
늘 먹는 일이 일입니다.
부엌샘과 도움꾼 상옥샘, 고맙습니다.
또, 겨울은 불을 관장하는 일이 이 산골에선 더욱 중하지요.
소사아저씨, 애쓰셨습니다.
그리고 귀한 자리를 귀하게 만들어준,
서른 아홉 아이들과
희중샘 서현샘 희경샘 진주샘 미현샘 서현샘 민우샘 선영샘 수미샘
아람형님 수현형님 윤지형님 연규형님 수진형님 희선형님
모다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기차 태워 보낸 뒤
어른들은 한 식당에 앉아 아이들이 남긴 글을 읽었습니다.
또 보자 하지요.
이들로 물꼬가 꾸려집니다.
고맙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여기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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